다행이다
다행이다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5.10.0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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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어머니가 다리를 다치신 지도 달포가 지났다.

당신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러 가시다가 힘이 풀려 주저앉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디에 부딪힌 기억도 없다 하시고 주저앉아서 일어서려 했더니 몸이 움직여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팔순을 넘긴 노인의 숭숭한 뼛속에 무슨 근력이 있을까마는 주저앉은 대가치고는 가혹한 날들을 보내고 계시는 중이다.

다른 곳 다치지 않고 다리만 다쳐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병문안 온 지인들의 인사말이 고깝게 들리지 않는걸 보면 나 역시도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보다.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한 가지가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이 아닐까 싶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좋지 않은 일이 더 번지지 않고 잘 마무리되어 다행스러움’ 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좋지 않은 일은 벌어졌는데 딱히 위로할 적절한 말을 떠올리기도 궁색하고 난처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을 한다. 이 말은 만병 통치약인양 장소불문하고 활용도가 탁월하다.

한 달 만에 퇴원하신 어머니가 우리 집에 머물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자식들 집에서조차 하룻밤도 주무시기를 완강하게 거부하던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다행이란 말을 입에 올린다.

거동이 불편하기는 해도 보조기구를 잡고 걸을 수 있어서 다행스럽고 연세가 많은 노령임에도 온전한 정신이 고마워서 다행스럽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딸과 사위를 바라보기가 불편하기도 할 텐데 아무런 내색 없이 계셔 주시는 것도 다행스럽다. 그리고 이것저것 챙겨드리는 대로 음식 타박하지 않고 드셔 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하다.

살아가면서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을 하지도 듣지도 않고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테지만 그리 녹록지 않은 것이 세상살이다.

나 역시도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을 참 많이 들으며 살았다.

예전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생사를 오락가락한 사람을 앞에 두고도 버젓이 쓰이는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이 내 귀에는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소리쯤으로 들려 야속했었다.

그런데 이 말처럼 오묘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그리고 이 말처럼 사람에게 위안이 되고 변명의 여지를 주어 숨구멍을 틔워 주는 말도 흔치 않은 듯싶다.

느닷없이 어머니에 닥친 사고였다.

수술 후 혼자 거동이나 할 수 있을지 모두가 걱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곳 다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어쩌면 ‘다행이다’란 말은 불행 앞에 주저앉지 말고 힘내라는 많은 사람들의 주문이 들어 있는 주술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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