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꿈
개꿈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24.04.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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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씨앗 한 톨
개꿈(필자의 반려견).
개꿈(필자의 반려견).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사무실의 자리 배치를 새롭게 했는데, 개인 공간은 좁아지고 나아진 게 없었다. 함께 쓰는 곳이라서 뚜렷한 기준과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기에,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속에서 불덩이 같은 것이 치밀어 올라서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해버렸고, 동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주섬주섬 물건들을 옮겼다.

광언(廣言)이 어지럽게 춤을 춘 개꿈이었다. 꿈이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밀물처럼 몰려오는 수치심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대중없이 어수선하게 꾸는 꿈이 개꿈이라고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개꿈을 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더구나 개 한 마리 등장하지 않았던 개꿈의 잔상에 시달리게 될 때면, 참담한 심정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편안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설치다가 깜박 잠든 사이에, 개꿈을 꿀 때가 많았다. 평소엔 손도 대지 못했던 난해한 수학 문제를 술술 풀어 재끼는 기분 좋은 개꿈을 꾼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답답하고 안타깝거나 섭섭하고 서운한 내용이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개꿈에 개꿈이 더해지는 날도 있었다. 끈질기게 달라붙은 개꿈을 떨쳐 내지 못하고 다시 잠들었다가, 아예 개꿈의 신세계로 입장해서 탈탈 털리는 경우였다. 그런 때는 살아간다는 게 껌벅거리는 형광등처럼 몽연(蒙然)해지면서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에세이스트

 

공허하고, 어처구니없고, 거친 경험은 개꿈만으로도 모자라지 않으리라.

황당하고, 무례하고, 비정하기 짝이 없는 개꿈 같은 현실은 이제 손사래를 치고 싶다. 예기치 못한 개꿈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도 당신의 삶을 싹 틔우는 씨앗 한 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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