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꽃 소년
눈물꽃 소년
  • 장홍훈 양업고 교장(세르지오 신부)
  • 승인 2024.05.16 18: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장홍훈 양업고 교장(세르지오 신부)
장홍훈 양업고 교장(세르지오 신부)

 

온갖 풀과 꽃, 나무 잎새들이 파릇한 생명력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계절이다. 학교장 전체 훈화 시간에 나태주 시인의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시 `풀꽃 3'을 낭송하며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퀴즈도 냈다. “`참' 더하기 `기름'은 참기름이죠. `참' 더하기 `깨'는 참깨죠. 자, 문제 나갑니다. 아는 사람은 조용히 손들어 주세요. `참' 더하기 `설탕'은 뭘까요?”

정답을 맞힌 세명의 아이들에게 박노해 시인의 `눈물꽃 소년, 내 어린 날의 이야기' 책을 선사했다. 대자연이 제철을 맞이하는 때이다 보니 절로 아름다운 시집을 펼치게 된다.

초봄, 박노해 시인의 시를 읽어주고 널리 알려 줘 감사한다는 예쁜 글씨의 엽서와 함께 책 `눈물꽃 소년'을 선물로 받았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구구절절 삶의 깨우침을 주는 감동이 밀려왔다.

예수님이 사셨던 나이만큼 33편의 본문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전해오는 `깨달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정 많은 할머니가 전해 준 지혜롭게 살아가는 삶의 정수, 42세에 돌아가셨지만 남을 위한 사랑을 남겨주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 서른 후반 인생 홀로 자녀들을 키워내신 어머님, 동생을 믿어준 형님의 이야기, 우주를 만드신 하느님을 알려주신 호세 신부님과 동강 공소 신자들, 졸업식 날 국밥을 내던 시장 골목식당 주인의 이야기까지! 내 눈에는 복음의 예수님 이야기와 다름이 없었다. 마치 내 이야기인 양 몰입돼 찐한 감동이 흘렀고 내심 `눈물꽃 소년'과 하나가 되었다.

큰 물고기 잡고 싶어 사투를 벌인 이야기에서는 욕심 때문에 무모한 소년기의 모습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밀물이 몰려와 목을 넘더니 눈까지 차올랐다. 파도가 들이칠 때마다 바닷물을 꼴까닥 꼴까닥 삼키며 버둥거려 봐도 발이 갯벌 바닥에 닿지 않았다. `야 인자 죽었구나, 꼼짝없이 죽겠구나' 공포감에 허우적댈수록 물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온몸이 굳은 채 하얗게 질려가던 나는 그제서야 움켜쥔 물고기를 놓았다.”라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영원히 기억하고 살아야 할 깨달음이 와 닿았다. “힘 빼!” 그리고 “…절대로 안 가라앉는다잉. 바다를 탁 믿어부러.”

무언가에 집착할 때, 악착같이 이기려 할 때, 빛나고 좋은 것을 한다는 욕심이 들 때, 그 순간 퍼뜩, 시인은 “힘 빼! 얼른 놓아버려!” 하는 소리와 함께 제정신을 차린다고 한다.

무엇이 한 명의 사람을 빚어내는지? 할머니, 부모와 아이, 스승과 제자, 이웃과 친구는 어떠해야 하는지? 오늘의 나를 만든 순간들은 무엇인지?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커다란 깨달음들! 눈물꽃 소년은 육십 살 나이를 소중히 돌아보게 했다.

시인은 작자로서 말한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이야기'이다. 자기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해온 이야기, 자신만이 살아온 진실한 이야기, 그것이 최고의 유산이다.” 사람에게는 평생을 지속되는 `결정적 시기'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소년 소녀 시절이다. “인생 전체를 비추는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의 틀이 짜여지고 신생의 땅에 무언가 비밀스레 새겨지며 길이 나버리는 때 단 한 번뿐이고 단 하나뿐인 자기만의 길을 번쩍, 예감하고 저 광대한 세상으로 걸어나갈 근원의 힘을 기르는 때, 그때 내 안에 새겨진 내면의 느낌이, 결정적 사건과 불꽃의 만남이, 일생에 걸쳐 나를 밀어간다.”라고 한다.

5월이 가기 전 모두가 `눈물꽃 소년'이 되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이루는 푸른 `깨달음'에 도달해 보시면 좋을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