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식으로 오월, 이팝꽃
나만의 방식으로 오월, 이팝꽃
  •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 승인 2024.05.0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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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이팝꽃이 하얗게 피었다. 이팝나무의 학명은 `하얀 눈꽃'이란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꽃송이가 온 나무를 하얗게 덮고 있는 모습이 마치 사발에 소복이 얹힌 쌀밥같다 하여 `이밥나무'라고 하였고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5월이면 여러 곳에서 이팝꽃 축제가 열릴 정도로, 이팝나무는 하얀 꽃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그런데 우연히 이팝꽃이 광주의 오월을 상징하는 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밥과 오월, 이팝꽃…. 관련 없다고 느꼈던 것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80년 5월, 이팝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 군사독재와 통치에 맞서 광주에서 시민은 계엄령 철폐와 민주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계엄군은 탱크를 앞세워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몰아부쳤다.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나가는 속에서도 광주 시민들은 “이 밥”을 먹고서 힘을 내자며 서로에게 주먹밥을 건네면서 끝내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팝나무도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와 격려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온몸으로 하얗게 꽃을 활짝 피우면서 사람들에게 그늘도 만들어 주고 은은한 쌀밥의 향기도 전했으리라.

5월이 가고 이팝꽃이 질 무렵 주먹밥을 건네던 임들은 총칼 앞에서 끝내 스러졌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다시 아름다운 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고 따스한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팝꽃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5·18 민주묘지로 가는 도로 양쪽으로 이팝나무들이 길게 심겨져 있다. 해마다 5월이면 이팝나무는 하얗게 꽃을 피우고 은은한 주먹밥 향기를 전하면서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기억해, 그들을… 그들이 지키려 했던 `풀뿌리 민주주의'를… `함께하는 세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지를…그걸 영원히 사랑해야 해….”

풀뿌리 민주주의와 대동(大同) 세상을 영원히 사랑하라는 그 속삭임이, 이팝꽃의 속삭임인지, 그날 스러져간 임들이 속삭임인지는 알 수가 없다.

1980년 5월, 나는 공주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선생님을 꿈꿨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4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했고 지난해에는 나이가 되어 퇴직도 했다. 퇴직 후의 진로를 고민하다가 어린 시절의 꿈을 찾고 싶어 새로 대학에 입학하여 지금은 작곡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다 얼마 전 이팝꽃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가슴이 찡해졌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늘 그들에게 빚을 진 기분이었는데 그날의 이야기를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팝꽃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광주의 이야기가 무겁고 아프지만 끝내 멈추지 않고 나아가려 했던 그들의 마음을 이팝꽃에 담아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는 느낌으로 선율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이팝꽃의 속삭임'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5월을 기리는 창작가요제가 매년 광주에서 열리고 있다. 나는 내가 작곡한 노래를 3학년 선배에게 부탁하여 불러달라고 했다. 고맙게도 예쁘게 불러 주었다. 이 음원으로 5월 창작가요제에 출품하였는데 아쉽게도 본선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반증이리라. 그렇지만 누군가의 평가를 떠나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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