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원하는가 그러면 두려움도 알라
힘을 원하는가 그러면 두려움도 알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22 21: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국회의사당에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하고 이에 질세라 소화기와 물대포까지 떠밀려 나왔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정치폭력에 면역됐다고 해도 이날 광경은 많은 국민들에게 70년대식 중압감을 안기고도 남았다. 그렇다. 바로 그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30년을 후퇴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아주 간단한 데 있다. 사회적 강자를 합리적으로 규제하고 견제할 시스템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별된다. 있다면 선진국이고 없다면 후진국 내지 미개국이 된다. 이런 분류법은 사람의 인격과도 직결된다. 힘과 돈을 가진 자가 이를 무기로 상대를 업신여기고 깔아 뭉갠다면 형편없는 속물이 되겠고, 그 반대로 힘과 돈을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며 약자를 배려한다면 본인이 원치 않아도 훌륭한 인품으로 대접받는다. 국가와 사회의 이념, 사상은 그래서 중요하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 미국으로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곳이 부자나라여서가 아니라 '힘'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나라이기에 선호한다. 반만년 역사의 대한민국 시각에서 보면 그야말로 족보없는 나라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가진 자의 힘과 권력을 규제하는 국가적 시스템을 소중하게 여김으로써 세계 최강의 입지를 흔들리지 않게 구축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 힘의 남용을 우려하고 경계해야할 시점에 와 있다. 전쟁시 군대에서나 나올 법한 '초전박살'이니 '목숨걸고 사수'니 하는 극단적인 용어가 대의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횡행하는가 하면 수구언론의 논조는 날로 살벌해지고 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어깃장을 놓는 놈은 가차없이 잡아들여야 한다는 논지다. 국회의 폭력사태에 대해서도 새로운 법을 만들어 응징하자고 부추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도 결연해졌다. 자신이 하는 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톤이 갑자기 높아진 것이다. 최고 지도자로서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은 절실하다. 하지만 국민들을 상대로 단정적인 말을 남발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여당 대표라는 사람은 한술 더 떠 "전 국토에 망치 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한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심히 걱정되는 흐름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판이다. 더 늦기 전에 힘에 도취된 이런 결기를 국민의 이름으로 다스려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구든지 힘을 얻으면 그 힘을 과시하고 싶고 항상 그런 유혹에 휩싸인다. 권력이란 것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을 자기 의사대로 부릴 수 있는 물리적인 힘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러한 힘과 권력에 취한 자들이 민중과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착각했을 경우다. 역사는 늘 이것을 경고해 왔다.

시대를 불문하고 국민은 절대로 특정인, 특정집단에 모든 힘을 몰아주지 않았다. 이를 간과했을 경우 그 끝은 비극적이었다. 집단애국주의에 매몰돼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그랬고, 숱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잡아 족친 대한민국의 독재 정권이 그랬다. 지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힘을 얻었다고 확신하는 순간, 되레 불행은 시작일 수 있다. 권력의 속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문호 톨스토이는 '국가는 폭력이다'고 단정했다. 마키아벨리는 원수에 대한 처단은 즉각적일수록 좋고 진정한 평화는 완벽한 복수와 응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봤다. 사실 국가라는 실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위해 이에 대항하는 세력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로 인해 그 옛날에도 권력은 경찰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국가는 폭력이라고 해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국가 생존방식과 지금의 그것은 분명 다르다. 그런데도 후진국은 여전히 이런 권력과 폭력의 상관관계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그러다가 권력으로 흥한 자 권력으로 망하는 후진국들을 여전히 목격하고 있다. 이것이 해머와 전기톱이 난무하는 국회를 바라 본 그날의 일그러진 단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