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6.10.0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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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심억수

지난 주말 청주문인협회에서 실시한 문학기행에 참여하였다.

만해 한용운 시인의 얼이 깃든 백담사와 한국시집박물관 그리고 박인환문학관을 다녀왔다.

길을 나설 때면 마음이 설렌다. 길을 나서면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다. 미지의 낯섦과 마주하면 희망으로 부풀어 행복하다.

만해 한용운 시인의 예술과 철학, 나라 사랑이 깃든 백담사로 가는 길은 시인이 걸어온 길 만큼이나 험준한 외길이다. 오직 나라를 걱정한 그의 정신은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이다. 민족의 자랑이요 겨레의 큰 스승인 만해 한용운 시인의 숨결이 서린 백담사에 가을 햇살이 곱게 내려앉는다. 만해는 지조와 기개로 민족정기를 만방에 떨친 독립 운동가요, 사상가이며 시인이다. 만해기념관의 유품을 둘러보며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삼일독립선언 후 재판장에서 당당하게 “조선인이 조선 민족을 위하여 스스로 독립운동하는 것이 백번 마땅한 노릇인데 일본인이 어찌 감히 재판하려 하느냐”고 일갈하던 모습을 상상하며 방명록에 “아! 한용운 시인님은 갔습니다. 후배는 통곡합니다. 백담사 처마의 서릿 달빛에 눈물 걸어 두고 갑니다.”라고 짧은 소회를 적어 두고 한국시집박물관으로 향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만해마을에 위치한 시집박물관은 지상 2층 규모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샛길로 소나무가 아름답다. 건물 창마다 가을 풍경이 담겨 한 폭의 산수화다. 1층 로비에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시집을 대여해 읽을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그리고 각종 체험학습이 가능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지상 2층은 근현대 시기의 한국시집 등을 연대기로 전시한 상설 전시실이 있다. 전시실에는 국내외 많은 시인의 시집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 희귀시집으로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육사시집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시집도 있다. 모두 기증시집이란다. 평소 청주에 문학박물관을 만들자고 관계기관에 건의했었지만 공허하다. 작은 산골 마을에 시집박물관이 있어 문학인으로 부럽고 부럽다. 졸저 두 권을 기증하고 박인환 문학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박인환 시인은 모더니즘의 대표시인이다. 문학관은 박인환 시인의 활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오장환 시인이 운영하던 서점을 넘겨받아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운영하였다. 서점에는 여러 문인의 작품과 문예지, 화집 등이 소장되어 있다. 김광균, 김기림, 정지용, 김광주, 김주영 등 여러 시인과 소설가들이 자주 찾는 문학 장소였다고 한다.

`유명옥'은 김수영 시인의 모친이 충무로에 낸 빈대떡 집이란다. 김수영, 박인환, 김경린, 김병욱 등이 모여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출발과 후기 모더니즘의 발전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 장소란다. 동인지 ‘신시론’이 창간되었다.

`봉선화 다방'은 8·15광복 이후 명동에서 가장 먼저 개업한 곳이다. 문인과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시낭송의 밤, 출판기념회, 전시회 등을 열었다. 그밖에 ‘모나리자 다방’, ‘동방싸롱’, ‘포엠’ 등 당시의 명동거리를 재현해 놓아 옛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50년대 격동의 세월을 살다가 30세의 젊은 생을 마감한 박인환 시인의 고뇌를 상상해 보았다.

길을 나서는 것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고백하고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삶에 대한 독백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박인환의 대표 시 `세월이 가면' 시구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처럼 먼 후일 서로의 기억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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