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강했다
호강했다
  • 김용례<수필가>
  • 승인 2016.02.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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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용례

며칠 호되게 추웠다. 오늘은 추위가 좀 누그러졌다. 팔순의 친정 부모님은 춥지 않아도 겨울이면 바깥출입이 불편하시다. 영하 10도를 넘나들었으니 꼼짝없이 집안에 계셨다. 답답해하시는 두 분을 모시고 물 좋은 곳에서 온천욕을 시켜 드리고 점심을 사드렸다. 점심을 드시며 어머니께서 “ 아이구 큰딸 덕에 호강했다. 고맙다.” 하신다. 세상을 다 내려놓으신 평온한 표정이다. 호강이란 말에 코끝이 맵다. 호강했다는 말을 입속에서 우물거려보았다.

어머니의 젊은 날은 고단하셨다. 시부모님, 시누, 시동생들까지 열서너 명이 함께 사는 집안의 맏며느리. 아버지는 회사에 다니셨지만, 월급으로는 식구들 먹는 쌀값밖에 안 되었단다. 그래서 돼지를 키워 고모와 우리 학비를 마련했다. 나무를 때서 식구들 밥을 지었고 찬물에 빨래했다. 할아버지 바지저고리를 지어 드렸고 이불빨래는 풀을 먹여 다듬이질해야 했다. 그때 나는 옆에서 이런 거 안 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시집가면 이런 일 안 하고 살 거라고 했다. 서울에는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물도 나온다더라 하시며 너는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그리 살아라 하셨다. 어머니는 당신 딸들은 절대 맏며느리자리는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 시절 대부분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 삶은 오직 가족을 위해서만 존재했다. 그런데 두 딸 모두 맏며느리자리로 시집을 갔다.

지금도 어머니가 내 흉을 보시는 사건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다. 수학여행을 가는데 용돈을 조금밖에 주지 않아 마루 끝에서 온종일 골질을 하고 있었던 일이다. 아침나절 시작하여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밥도 안 먹고 마루 끝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속상한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때 나는 집에 돈이 없다는 생각은 못했다. 어머니는 달래다가 혼을 내도 막무가내인 딸을 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 말씀대로 하면 지금 우리는 모두 호강하며 사는 것이다. 대부분의 집집이 수도꼭지만 누르면 뜨거운 물이 줄줄 나오고 빨래도 세탁기가 해주고 세척기에 그릇만 넣고 버튼만 누르면 그릇이 깨끗이 닦아져 나온다. 어머니의 젊은 날에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살면서도 호강하며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 나 될까. 마음을 조금만 너그럽게 가지면 행복이 내 주변에 머문다는 것을 우린 잊고 산다. 무엇이 부족하여 이리 허덕거리고 사는지. 잘 먹은 얼굴은 번지르르하고 몇백만 원 하는 모피를 입고도 추위에 떤다.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바깥출입이 불편하신 두 분을 모시고 바람 쐬어 드리는 게 가끔은 숙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으니 말이다. 자식들의 수고로움이 미안하여 먼저 나가고 싶다는 말씀도 못하신다. 그 많은 식구 뒷바라지를 혼자서 다 하시던 어머니는 이제 힘이 부처 당신 몸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닦은 것도 호강했다 하신다.

설 명절도 지나갔다. 이제는 겨울이 서서히 물러갈 채비를 한다. 따뜻한 봄날,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모시고 섬진강 꽃길을 끝없이 달릴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꽃이 된다.

팔순의 부모님은 또 큰애 덕에 호강했다. 고맙다. 하시겠지. 이 호강을 몇 번이나 더 시켜 드릴지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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