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58>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58>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2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상의 노인과 암살자들
부귀영화는 간데없고 아스라한 풍경만이…

알라오딘은 천국과 비슷한 정원을 만들어 청년들 현혹

천산의 물 향기로 가슴을 적시며 구약성서에서 모세가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란 곳이 바로 이런 지역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마르코 폴로가 얘기한 산상의 노인과 암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며 물가에 발을 담그어 본다.

알라오딘(Alaodin)이라 부르는 산상의 노인은 알라무드 요새의 계곡에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정원과 과일을 심고 세상에서 온갖 멋진 것들로 장식한 집과 궁전을 지었다 한다. 게다가 그는 도랑을 파서 그 중 어떤 곳은 포도주가 흐르고, 우유와 꿀과 물이 흐르게 했다. 악기와 춤에 능숙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교와 교태를 남자들에게 부리는데 능숙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인과 아가씨들을 정원과 궁전사이를 거닐게 하였다.

그 노인은 마호메드가 사라센들에게 천국에 가는 사람들은 희망하는 대로 마음껏 아름다운 여자를 소유할 것이며, 포도주와 우유와 꿀과 물이 흐르는 강들을 볼 것이라고 말하며 천국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 방식으로 알라오딘은 천국과 비슷한 정원을 만들도록 했던 것이다. 이 정원 안은 그가 암살자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비밀 통로를 거치지 않고는 다른 곳을 통해 요새로 들어올 방법이 없었고, 또한 정원 입구에 견고한 성채를 갖고 있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노인은 그 지방에 사는 열두 살에서 스무 살 사이의 모든 청년들을 자기 궁전에 데리고 있었다. 용사가 되고자 하는 이 젊은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잠에 떨어지면 그들을 천국의 정원으로 데려가게 한 뒤 깨우는 것이다. 그 젊은이들은 깨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노래하고 쾌락을 즐기며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소유하게 만들었다.

노인은 그들 중 누군가를 어떤 곳으로 보내 다른 사람을 암살하려고 하는 경우 먼저 그에게 마음껏 마실 것을 주게 하여 잠에 곯아떨어지게 한 뒤 그를 자신의 궁전으로 데리고 왔다. 잠에서 깨어난 이 젊은이들은 자신이 궁전의 성채 안에 있음을 발견하고 크게 놀라며 상심하게 된다. 그들이 천국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강열한 열망을 갖게 만든 후에 노인은 자기 말을 듣는다면 그 같은 은총을 베풀겠노라고 약속한다. 이렇게 해서 노인의 적이었던 많은 군주들과 다른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부하와 암살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암살자들이 그토록 용맹했던 까닭은 노인의 명령과 뜻을 수행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현세를 경멸하며 주군의 적과 함께 죽기를 바라면서 자신을 내 던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 지방에서는 모두 그를 폭군으로 여기며! 두려워했다. 산상의 노인에게 지목되기만 하면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왕과 고관들은 그가 혹시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에 선물을 바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동방 타타르의 군주 울라우는 이 노인이 암살자들과 함께 못되게 행한 모든 짓들을 알고 많은 병사들을 성채로 보내 3년이나 포위하였으나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3년째 되던 해에 성채 안에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져 버리자 요새는 함락되었고, 알라오딘이라는 노인과 부하들은 모두 살해되고 말았다.

투루판의 포도농원 계곡이야말로 천산의 유리알 같은 맑은 물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포도밭으로 오아시스의 낙원 같다. 산상의 노인이 꾸몄던 정원과 궁전을 생각하며 천천히 계곡의 물길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포도농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수공타(蘇公塔)로 향했다. 수공타는 투르판시 동부 교구 2km 지점에 위치하며 신장에 남아 있는 제일 큰 고대 탑이다. 높이가 44m, 내부 계단이 72개나 되는 이 탑은 흙벽돌을 원주식으로 쌓아 올려 끝이 점점 가늘어지며 하늘로 치솟는 모습을 하고 있어 기하학적인 조형미가 돋보였다.

수공타는 이곳이 회교지역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1779년 청나라의 유명한 장군인 투르판 왕 으민허주어(額敏和卓)의 둘째 아들인 수래만(蘇來曼)이 아버지의 행적을 기념하고 청나라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기 위하여 스스로 7000량(兩) 백금을 내어 건설한 탑이다.

투르판인들은 돈을 좋아한다는 운전기사의 말처럼 사원을 입장하는데 20元을 내야하니 들어가기를 포기하는 동료가 대다수였다. 먼발치에서 사원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며 수공타을 떠났다. 그 다음 코스로 찾은 곳은 투르판 칼징 민속원이다. 이곳은 칼징과 관련된 일종의 박물관으로 물을 천산에서 끌어들이는 수로의 모형과 조감도를 보여주며 안내원이 설명해 주고 있다. 투르판시의 30%가 칼징으로 물을 공급받고 있다고 한다.

설명을 들은 후 땅속으로 터널을 뚫고 수로를 만든 칼징을 따라 발을 담그고 걸으면서 시원한 천산의 물길을 음미해 보았다. 위그루족 집으로 들어가 구경하고 사진 촬영하는데 5元에서 50元까지 다양했다. 천산의 맑은 물을 배경으로 예쁜 위그르 처녀들이 돈을 받고 사진을 함께 찍어주고 있다. 예쁜 미소와 화려한 의상이 매우 정겨웠다. 포도넝쿨 아래 늘어선 건포도와 선물가게 코너를 돌면서 손에 닿는 포도송이를 따서 투르판의 정취를 한껏 음미해 보았다.

천연요새 지오허구청(交河古城)

민속원에서 10여 분 달려 지오허구청(交河古城)에 도착했다. 지오허구청의 문물진열관에는 전한시대 차사왕국(車師王國, BC 108 AD 450)의 수도로 석기와 석구, 그릇, 도자기, 토기 등을 전시하고 있다. 문물진열관을 나오니 살인적인 더위가 기다리고 있다.

냇물이 만난다는 뜻의 교하(交河)라는 곳엔 실제로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양쪽 냇가에서 조금 떨어진 벼랑위로 고성의 흔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체가 절벽으로 둘러싸인 고성은 남북이 1600m, 동서의 폭이 300m 되는 작은 언덕산이다.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 진흙성벽의 잔해를 바라보며 수도승 같은 기분으로 언덕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야트막한 산정을 중심으로 수천 년 풍파에 시달린 성벽잔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따가운 햇살에 누워 있다. 성벽 지하 굴을 나오면 눈앞에 펼쳐진 성안 구조물들이 비바람에 녹아내린 듯한 몸짓으로 숨을 죽이고 있다. 살을 뚫는 듯한 직사광선을 쪼이니 체감온도가 50도 쯤은 되는 것 같다. 성벽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중앙도로에 나서서 앞을 보면 아직도 많은 성채의 잔해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천 년 비바람에 씻긴 기묘한 성벽의 형상들이 좌우에 촘촘히 늘어선 모습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과 인생의 덧없음을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같이 왔던 일행들은 더위에 지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고대 성곽의 흔적을 따라 홀로 걷는 기분은 잃어버린 왕국의 미로 속에 빠져 잊혀져간 자신의 흔적을 더듬는 기분에 젖게 한다.

북쪽 중심가에 위치한 높이 10m의 대불사(大佛寺) 잔해와 옛 종루 터를 돌아 건물벽면이 상당히 많이 보존된 북쪽 끝으로 나오면 서북소사(西北小寺)란 옛 절터를 만나게 된다. 기원전 45세기에 건축했고, 10세기경에 재건축을 하였으나 지금은 수없이 갈라진 성체의 잔해와 세월이 남기고 간 흔적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우측으로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검은 빛 민둥산이 에워싸고 좌측으로는 푸른 숲이 우거져 있어 기묘한 극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우측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와서야 비로소 진흙으로 갈라진 커다란 계곡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계곡 아래에는 옥수수밭과 농작물들이 경작되고 맑은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신기루를 보는 것 같았다. 계곡 저 아래엔 새들이 지저귀고 농부들이 밭을 매고 있다. 물가엔 키 큰 포플러나무가 좌우로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인적이 없는 황량하고 텅 빈 성터자락에서 먼 발치에서 기웃거리는 그림자를 보고 반가움에 이리와 보라고 손짓을 하였다. 고성 입구에서 함께 출발했던 일본인 나쯔코와 코또네 두 아가씨였다. 나쯔코는 사막을 무척 좋아해서 둔황의 밍사산을 세 번이나 가고도 부족하여 다시 가고싶어 해서 동행한 코또네를 무척 고생하게 만들었다는 특이한 여성이다.

사막의 여인 나쯔코와 친구 코또네 만이 마지막 서북사원까지 온 유일한 사람들이다. 반가움에 일본인 여대생들에게 계곡을 발견한 장소를 가르켜 주고 사진 찍기 가장 좋은 장소를 알려주었다. 작열하는 햇살에 지쳐 모두 돌아갔는데 유독 일본인 두 여대생만은 끝까지 답사하는 열의를 보여 매우 감동을 받았다. 둔황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막을 좋아하는 일본인 여대생을 고성의 마지막 벼랑 끝에서 또 다시 만났으니, 그녀들을 위해 두 번씩이나 셔터를 눌러주어도 기분이 매우 좋았다.

더위에 지쳐 이곳까지 오지 않았다면 고성을 이곳에 세운 이유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고성을 둘러싸고 양쪽으로 하천이 흐르고 적으로부터의 공격이나 방어에 유리한 암벽 계곡은 천혜의 조건을 갖춘 하나의 요새로서 군사적 요충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지형이다. 고성은 하천을 헤치며 질주하는 거대한 함선을 연상시키는 그런 모형과 지형을 가지고 있다.

시인·극동정보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