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 문백전선 이상있다
281.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1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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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596>
글 리징 이 상 훈

"염치가 왕을 만나지 못하도록 죽여 없애야 하네"

사실 매성과 평기가 이런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오래 전, 염치가 사부(師父) 아산온인의 추천으로 병천국에 들어와 아우내왕의 특별 배려에 힘입어 고급 관리 노릇을 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외지인 그를 무척 아니꼽게 생각한 나머지 이것저것 생트집을 잡아가며 시비를 걸거나 아무런 근거도 없이 중상모략을 해대곤 하였다.

특히 염치 때문에 그 자리에서 물러난 관리들의 비방이 심했는데 염치는 이에 당당히 맞서서 자기를 변명함과 아울러 그들의 과거 비리들을 낱낱이 조사하여 삼척동자들도 알게끔 아예 공개적으로 까발려 버린 사실이 있었다. 이 바람에 아우내 왕은 크게 노하여 비리에 연루되었던 자들을 한꺼번에 모두 잡아 투옥(投獄)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런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매성과 평기이기에 염치는 틀림없이 자기들의 비리를 알게 모르게 미리 조사해 놨을 거라는 생각을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딱 한 가지! 놈을 아예 깨끗이 죽여 없애는 거야. 원래 죽은 자는 말을 하지 못하거든."

매성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뱉듯이 다시 말했다.

"맞아!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염치 놈이 왕을 만나 뵙지 못하도록 죽여야 해! 그래야 우리들의 만수무강에 아무런 지장이 없게 되지."

평기가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댔다.

"평기! 그럼 비밀리에 명령을 내리게나. 만약 병천국 국경이나 변두리 어느 곳에서라도 도망치는 염치 놈을 발견한다면 애써 사로 잡아올 것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목을 쳐버리라고 말이야. 도망치다 붙잡힌 염치가 부끄러워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는 식으로 일을 꾸미면 될 것이 아닌가"

매성이 음흉스런 미소를 한 입 가득히 머금으며 말했다.

"어쨌든 놈의 숨통을 끊는 것이 중요해! 자,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뭔가 서둘러 보자구."

평기의 말에 앉아있던 매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편, 어린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고자 자기 아내와 함께 마차를 몰고 부지런히 병천국 국경을 넘어가던 염치는 갑자기 뜻하지도 않았던 일을 만나고 말았다. 비좁게 나있던 산길이 그나마 중간에서 뚝 끊겨버린 것이었다.

"허허! 여보! 이걸 어쩐다지 더 이상 마차를 타고 나갈 수가 없게 되었으니."

염치가 어쩔 수 없이 마차를 멈춰 세우며 아내에게 말했다.

"어머머! 마차가 왜 못 간다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내려서 걸어가자는 말이에요"

염치 아내가 잔뜩 골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직접 보구려. 저렇게 험하고 좁은 길을 마차가 지나갈 수 있는지."

"까악! 정말 그러네!"

마차 안에서 고개를 내밀어 밖을 내다본 염치의 아내는 크게 실망한 듯 가벼운 비명을 내질렀다. 겨우 두어 사람이 큰맘 먹고 지나갈 수 있을만한 정도의 비좁은 산길.

게다가 바로 그 아래는 깎아지른 듯 천길만길이나 되는 계곡이 아닌가!

그러니 자칫 발이라도 잘못 디뎠다가는 저 무시무시한 절벽 아래로 곧장 떨어져서 아예 뼈조차 추스를 수 없는 꼴이 되고 만다는 얘기이다.

"여보! 이제부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두 발로 조심스럽게 저기를 지나가야만 할 것이요. 자, 저곳만 지나가면 비교적 수월한 길이 다시 나올 것이니 우리 용기를 내 봅시다. 여보! 각오는 단단히 되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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