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속활자에 눈 뜬 일본
<1> 금속활자에 눈 뜬 일본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8.08.11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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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임진왜란은 활자전쟁이었나
돗반박물관에 전시된 일본의 3차 동활자주조로 출판된 군서치요.
침입 이듬해 '약탈 활자' 바친 풍신수길

도쿠가와 이에야스 임란후 자체 금속활자 쓰루가판 주조 성공
치열한 권력투쟁속 인쇄술 바탕 유학·주자학 등 새이념 보급


임진왜란 당시의 긴박했던 광경을 그린 부산진성순절도 중 일부.
1592년 조선을 침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는 이듬해인 1593년 당시 일본 왕이었던 후양성 천황(後陽成天皇)에게 조선의 동활자를 바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어 일본을 통일한 후 1603년 에도바쿠후(江戶幕府)를 창설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2∼1616)는 1606년 제1차 동활자를 주조해 역시 후양성 천황에 바친다. 일본은 이를 '德川 銅活字(도쿠가와의 동활자)'라 부른다.

일본의 제2차, 3차 동활자 주조는 명나라 사람(唐人)과 조선인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동활자 주조 기술자 임오관(林五官)에 의해 1615년, 1616년 이뤄진다. 제2차, 3차 동활자주조는 일본이 조선활자를 본 떠 자체 제작한 최초의 금속활자가 된다. 일본은 쓰루가판(駿河版)이라고 하는 이 활자로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2차 주조 활자본)과 군서치요(群書治要·3차 주조 활자본)를 출간한다.

쓰루가 활자를 소장하고 있는 도쿄 돗반박물관이 출간한 '준하판 동활자 주조기법의 해석'에 포함된 참고 도표 '준하판 동활자의 역사적 위치'를 보면 이 같은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취재팀이 중요문화재로 지정(1962년)된 쓰루가 활자를 소장하고있는 돗반 박물관을 방문하자 학예사(학예관)들은 이 도표를 건네며 일본의 인쇄사를 설명했다.

이 도표가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컫는 문록의 역(文祿·분로쿠·の 役) 이듬해에 표기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이조동활자(李朝銅活字) 후양성천황(後陽成天皇) 헌상(獻上)'부분 때문 이었다. 전쟁 이듬해 조선의 동활자를 천황에게 헌상했다는 내용은 일본 전래 경위와 성격을 한마디로 압축한 것으로 받아들여 졌다. 1593년은 일본군이 평양, 함경도까지 진격했다가 조·명 연합군의 반격에 밀려 경상도 일대로 후퇴해 강화회담과 공격을 거듭했던 시점 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조선의 금속활자를 헌상 받은 일왕 후양성(고요제이)는 1597년 권학문(勸學文)를 출간한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기술돼 있다.

"책을 찍을 때 마다 한 자씩 새겨(부워) 만들어서 한 자씩 판에 올려서 판짜기하여 한 판씩 나가도록 공인에게 명하였다. 이 법은 조선에서 들여 왔는데 매우 좋아서 불편함이 거의 없어 이를 본 떠 이 책을 찍는 바이다. 고요제이 2년(1597) 8월 찍다."

'조선 금속활자'라는 신기술을 접한 일본의 경이로움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 이다.

일본의 금속활자 역사는 이처럼 조선활자가 넘어가면서 시작됐다.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동활자를 바친지 13년만에 제1차 동활자 주조에 성공해 천황에게 바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본거지인 쓰루가(駿河·현 시즈오까) 슌뿌성(駿府城)에 머물며 조선에서 가져간 놋쇠 활자와 이를 본 떠 만든 구리활자를 이용해 대장일람집 11책과 군서치요 47책을 찍었다.

패권싸움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임진왜란을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서 약탈한 장서와 활자, 인쇄공들까지 손에 넣은 후 이 같은 일을 했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약탈 유산을 자신의 학승이 운영했던 후시미(伏見) 학교에 기증했다고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伏見版은 이렇게 탄생했고, 쓰루가 문고 장서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장서들은 일본 내각(內閣)문고와 궁내청 서능부(宮內廳書陵剖) 장서의 토대가 됐다고 한다.

나경준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사가 도쿄 돗반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쓰루가 활자를 살펴보고 있다.

돗반인쇄박물관 관계자들이 취재진에 건넨 한권의 도록(圖錄)은 일본 인쇄문화사에서 차지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했다.

돗반인쇄박물관 개관특별기획전 도록 제목은 '강호시대(江戶時代)의 인쇄문화-도쿠가와 이에야스는 活字人間 이었다'였다.

임진왜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에서 가져간 금속활자와 이를 본떠 만든 쓰루가판 활자로 인쇄문화를 발달시켜 '活字人間'으로 추앙 받고 있는 것 이다.

임진왜란과 도요토미가(家)와의 오랜 권력투쟁이 끝나 새로운 제도와 통치이념이 필요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에서 전래 받은 유학, 주자학 보급에 열중했고, 직지를 한 단계 발전시켜 만든 조선 인쇄술은 긴요한 수단일 수 밖에 없었다.

라경준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가를 멸망시켜 일본의 지배자가 된 후 새로운 통치 이념을 담은 군서치요와 같은 책을 널리 반포할 필요를 느꼈고, 새로운 정보의 전파 수단으로 금속활자 인쇄기술을 사용했다"며 "하지만 이 때 만 해도 자체적인 금속활자 기술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 금속활자를 토대로 쓰루가 활자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 기획시리즈를 시작하며

충청타임즈 '살아있는 直指'2부 '임진왜란은 활자전쟁 이었나'취재팀은 현존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직지'등 고려시대와 조선초 금속활자 인쇄술이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에 전래된 흔적을 찾아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한국 인쇄술을 받아들인 일본이 인쇄문화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충청타임즈는 특히 이번 기획보도를 통해 직지가 지닌 의미를 재조명하고, 지향점에 대해서도 모색한다.

취재팀은 조선활자를 모방해 만든 쓰루가판 금속활자를 확인하기 위해 동경 돗반박물관을 방문했다. 이어 고려 초조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교토 남선사를 방문해 전래 경위 등을 취재했다. 일본이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를 받아들여 성경을 출판했던 유물 등을 소장하고 있는 구마모토 아마쿠사 기리스탄 박물관, 고려 초조대장경이 처음 보관됐던 후쿠오카 하코자키 신궁도 방문했다.

교토 남선사와 함께 고려 초조대장경을 소장하고있는 쓰시마섬 역사민속자료관 유물 취재도 병행했다. 일본 현지취재는 지난 7월 7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됐다. 1부 히말라야에 새긴 직지에 이어지는 이번 시리즈는 20회에 걸쳐 보도된다. 이번 취재에는 라경준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참여해 자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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