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 문백전선 이상있다
279.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1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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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594>
글 리징 이 상 훈

"이보게 매성, 아무래도 염치가 도망을 친 것 같소"

짐짝 속에 들은 것들이 바닥에 떨어져 와장창 깨지는 소리를 내자 염치는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졌다. 염치 아내는 거칠게 숨을 몰아내 쉬며 남편 염치에게 다시 말했다.

"야! 서둘러!"

"으응"

"우리가 빨리 가봐야할 거 아니야 어서 말을 몰아요!"

"여보! 참 잘 생각하셨소. 그따위 재물이야 없다가도 생길 수 있고 생겼다가도 없어질 수 있는 것! 그러나 우리 목숨은 한 번 끊어지고 나면 영영 다시 생겨날 수 없는 것 아니오 지금 우리가 부지런히 달리면 아마도 오늘 저녁 안으로 무사히 고향 땅에."

"어머머! 당신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빨리 되돌아가서 내가 금은보옥을 감춰놓았던 그 귀중한 짐짝들을 찾아가지고 다시 오자는 건데."

"그, 그럼 우리가 병천국으로 되돌아가자는 말이오"

"흥! 당신 주제에 어디서 그 많은 금은보옥들을 다시 구해요"

"여보! 당신 정신이 있소 지금 그곳에서는 내가 몰래 도망을 쳤다고 난리가 났을 텐데."

"잔말 말고 빨리 갔다가 돌아오자고요. 재산이 없으면 죽고 말지. 지지리 궁상을 떨어가며 고달프게 살아갈 바에야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백 번 낫지 않아요 자, 어서 서둘러요!"

염치 아내는 이렇게 말하며 어서 빨리 행동으로 옮기라는 듯 그의 머리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팍팍 밀어버렸다.

"여, 여보! 우리 애들 한 번 생각해 보셨소"

"우리 애들이요"

"그렇소. 우리가 떠나기 바로 직전에 내가 믿을만한 사람들을 시켜 저 멀리 국경 마을 근처에 애들을 미리 데려다 놓게 하였소. 애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우린 빨리 가봐야 하오."

"어머머머!"

염치 아내는 남편의 입에서 자식 얘기가 나오자마자 크게 걱정되는 듯 별안간 얼굴빛이 확 달라졌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염치는 아내를 계속해서 설득해 나갔다.

"당신도 생각해 보오. 철부지 우리 애들한테 무슨 죄가 있겠소 우리가 빨리 가서 돌봐야지 자칫하다 애들한테 무슨 이상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찌하오 국경 근처에는 애들을 몰래 잡아다가 먼 지방으로 데려가 노비로 팔아먹는 아주 나쁜 놈들이 있다고 들었소."

"알 알았어요. 그, 그럼 우리 애들이 있는 곳으로 먼저 갑시다. 하지만 애들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은 후 반드시 우린 그걸 찾으러 가야만 해요. 알았지요"

"알았소!"

"꼭 약속 지켜야해요! 안 그러면 당신 내 손에 죽는 수가 있어요"

"알, 알았다니까."

이렇게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마부석(馬夫席)에 다시 앉은 염치는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난 다음 힘차게 말채찍을 휘둘렀다. 이윽고 염치 내외를 실은 마차는 또다시 뽀얀 흙먼지를 날리며 국경 쪽을 향해 아까 가던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이 무렵, 평기 대신은 매성 대신을 허겁지겁 찾아와 아주 숨 가쁜 목소리로 외쳤다.

"이보게 매성! 큰일 났소! 아무래도 염치란 놈이 도망을 친 것 같소!"

"염치가 도망을 그거 확실하오"

등받이 의자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채 커다란 백선(白扇)을 펼쳐들고 간간히 부채질을 해가며 책을 읽고 있던 매성이 침착한 목소리로 평기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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