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보은 속리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13. 보은 속리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8.08.08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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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천연기념물 그 천혜의 비상
지난 1990년 멋진 수형을 갖춘 정이품송(원안)과 현재 서쪽 가지가 부러지며 인공수혈에 수술자국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대조를 보이고 있다.
600년 세월의 흔적 옹이마다 고스란히

숱한 전설·풍파속 꼿꼿한 기상 품은 충북의 상징
몇차례 태풍·병충해 거치며 서쪽 가지 잘려나가

연숙자기자·생태교육연구소 터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천연기념물 정이품송은 나이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인 나무는 숱한 전설과 풍파 속에서도 꼿꼿한 기상을 드러내며 우리나라 소나무의 대표주자, 그리고 충북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소나무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소나무를 따진다면 누구든 속리산의 정이품송을 꼽을 것이다.
천연기념물 지정 기념비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벼슬을 받은 것에서부터 600년이란 세월 속에 범상치 않은 시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도 다 알 만한 정이품송이란 이름의 유래부터 병충해인 솔잎혹파리가 전국을 강타하며 각지의 소나무를 위협했을 때도 온 국민이 보여준 정이품송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사람도 아닌 식물에 쏟는 정성을 생각하면 이 나무 한 그루가 주는 문화적 가치는 경제적 가치가 따를 수 없는 품격을 지닌다 하겠다.

이러한 문화적 의미는 유난히 조선의 왕가와 인연을 닿고 있는 정이품송의 내력에서 비롯된다.

활쏘기를 좋아한 태조 이성계가 활쏘기 연습하다 이 나무에 활을 걸어 놓았다 하여 괘송정이란 이름을 얻었는가 하면 세조가 탄 가마가 소나무 아래로 지나갈 때 가지를 들어 가마가 무사히 지나갔다는 데서 정이품송이란 벼슬이 내려졌다.

또 숙종이 이 나무 아래에서 쉬었다고 용송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세대를 뛰어넘어 왕과의 만남을 가져온 것이다.

오늘날 장관급에 해당하는 직책을 가진 정이품송을 만나려면 충북의 알프스 속리산으로 가야 한다.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계곡이 빚은 속리산 절경은 세상 시름 잠깐 잊고 싶은 이들의 세속의 저편이다.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나무는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속리산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곧게 초록을 펼쳐 보이고 있다.

광장에 홀로 서 있어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확연히 드러나는 실체는 나무가 품었어야 할 아픔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쪽 나뭇가지가 뚝 잘려나가 반쪽이고, 큰 줄기 곳곳이 외과수술 흔적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언제였는지 알 수 없지만 하늘을 떠받친 가지들이 푸른 이파리를 내보내며 멋지게 연출했던 우산 모양의 수형은 이제 화석이 되어 표지판에 옮겨져 있었다.

비록 반쪽이 되고, 기둥에 의지한 채 하늘을 받들고 있지만, 마지막까지 선비의 기상을 꼿꼿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아픈 시선으로 보면 처절하기도 하고, 의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영화도 세월 앞에 몸을 낮춰야 하는 우주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도 정이품송이다. 병충해를 막겠다고 방충망이 쳐지기도 하고, 몇 차례 폭풍에 가지가 부러지며 인공수혈에 인공 수술자국으로 수형이 지닌 아름다움에 큰 금이 갔다.

어디 그뿐인가. 높은 벼슬을 무기로 한 정이품송 이름에는 세조와의 인연이 전설처럼 이어져 오지만 소나무가 보여준 충정에 빗대어 충신을 요구하는 당시 시대상을 간직하고 있으니 낮은 자세로 바라봐야 하는 영화의 뒷면 아닐까. 사람의 숱한 생각을 담아내면서도 600년을 푸르게 서있는 정이품송의 한결같은 모습은 모든 사람들의 표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귀용 충북도산림환경청 지방녹지연구사가 정이품송 후세 목을 살펴보고 있다.

◈ "40% 뿌리목으로 연명"

인터뷰/ 이귀용 충북도산림환경청 지방녹지연구사

종자 채취 통해 미동산서 후세목 키워


수세가 약해진 정이품송의 명맥을 잇기 위해 충북산림환경청 산하 미동산 수목원에서는 종자에 의한 양묘를 시도하고 있다.

소나무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이귀용 지방녹지연구사는"정이품송은 70년대 도로개통으로 복토가 이루어지며 뿌리목이 큰 상처를 입게 됐다"고 말하고"나무 밑동을 덮는 복토 작업은 나무가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들어 죽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나무 살리기에 나섰지만 "60%의 뿌리목이 죽고 남은 40%의 뿌리목으로 연명하고 있는 상태"라며 소나무를 살릴 방안으로 "죽은 부위에 뿌리목을 강화시켜주는 시술이 가능하지만, 천연기념물이라는 특수 상황에 놓여 있어 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방안으로 종자를 번식시켜 나무를 키우는 복원 방법이 진행되고 있다."1994년 처음으로 정이품송에서 종자를 채취해 양모에 성공하며 미동산 자락에는 600여 그루의 묘목으로 자라고 있다"는 이 연구사는 "다른 소나무와 특별히 차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정이품송과 주변지역의 소나무를 살펴보면 나무 자체가 좋고 수형이 매우 아름답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종의 복원과 번식 연구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2000년에 채취한 정이품송 종자도 양모해 현재 미동산 주변에는 1200여 그루의 정이품송 후세 목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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