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100일 잔치
이명박 대통령의 100일 잔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0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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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아기가 태어나 100일째 되는 날 부모는 잔치를 벌인다. 이른바 100일 잔치다. 힘겹게 낳아 노심초사 키우다가 100일이 지나면 일단 고비는 넘겼다고 판단한다. 때문에 앞으로는 온전하게 자랄 것으로 믿으며 처음으로 색동옷을 입히고 백설기를 만들어 이웃들에까지 인심을 쓴다. 아기에 대한 '희망'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지금이야 생활 및 의료발달로 영아 사망이 거의 사라졌지만 과거 어려웠던 시절엔 툭하면 병사하기 일쑤였고 부모들은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출생 신고마저 늦췄다. 이 때문에 지금도 40, 50대 이상은 대개 호적나이가 실제보다 한두살 아래다. 아이를 낳고도 이놈이 죽나 사나를 한동안 지켜본 후에야 비로소 실체를 인정했다. 그래서 100일 잔치를 통해 무병장수의 성장 가능성을 기원했다가 다시 출생 1년이 되는 날 돌 잔치를 벌여 완벽한 '완성'을 축하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100일이 되는 오늘, 그러나 우리는 탄생의 기쁨이 아닌 고통과 좌절의 일그러진 잔치를 공유하고 있다. 87년 6월 항쟁이후 다시는 재현하지 말자던 독기서린 '길거리 투쟁'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슬프다. 20여년만에 똑같은 전철을 밟는 이 나라의 저급성이 슬프고, 자기 손으로 직접 뽑은 지도자를 불과 100일만에 바로 그 손으로 거부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한맺힌 절규가 슬프다. 대학생이 뛰쳐 나오고 노동자가 결기를 세우는가 하면 공권력의 오기와 지식인들의 잊혀졌던 시국선언이 다시 터져 나오는 지금, 많은 국민들은 일일이 말로써 표현못할 상실감에 젖어 있다.

단순히 광우병에 대한 해법찾기로는 이미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 지금 국민들의 대폭발은 총체적인 이유에 근거한다. 처음 촛불을 부추긴 것이 광우병이라고 판단한 것부터 착각이었다. 정작 국민들은 광우병 그 자체보다도 자국민의 생존이 걸린 쇠고기 협상을 미국 대통령 별장에서 조공 바치듯 끝낸 것에 더욱 경악했다. 국민들이 얼마나 안중에도 없었으면….

이런 배신감이 강부자 내각과 이들의 땅투기까지도 인내하던 충정을 건드린 것이다. 삼겹살 1인분이 1만원을 돌파하고 1천원이면 2∼3개나 살 수 있었던 '아이스께끼' 조차 700∼1400원으로 뛰는데도 대통령의 눈에는 오로지 대운하와 대기업만 보였다.

틈만 나면 잃어버린 10년을 되뇌었지만 역으로 지난 10년 동안 우리사회는 엄청나게 변했다. 그런데도 바로 10년전의 척도로 세상을 바라보다가 오늘의 사태를 자초했다.

87년의 6월 항쟁과 오늘의 항쟁은 각각의 대표 구호인 '호헌철폐! 독재타도!'와 '고시철폐! 명박타도!'가 다르듯이 그 성격 또한 확연히 다르다. 87년엔 학생과 노동자가 주도하고 넥타이부대가 뒤를 따랐다면 지금은 아줌마가 앞에 서고 어린 학생들이 마이크를 잡는다. 자발적이면서도 각자의 외침이 다른 무정형의 시위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예측을 불허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무슨 배후세력이니 진보의 역습이니 하며 과거의 그 못된 버릇으로 도표를 그리느라 안달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지금의 국민적 분노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원초적인 불신에서 출발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통찰력처럼 만약 특정 정치집단의 관여나 배후조종까지 가미된다면 나라 전체가 또 다시 헷갈리는 형국으로 빠져 들 수 있다는 점이다.

특단의 수습책이 아닌 어설픈 임기응변의 해법을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100일에 크게 좌절하면서도 그렇다고 나라 전체가 혼돈에 빠지는 것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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