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법 용서의 판결문 화제
대전고법 용서의 판결문 화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1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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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19세 베트남신부의 죽음
원정결혼 폐해 비판… 장모씨에 12년 중형 선고

속보=대전고등법원이 19세 베트남 신부를 죽음으로 내몬 비정한 40대 남편에 대한 선고를 하면서 국민을 대신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을 판결문에 담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상준 부장판사)는 최근 19세의 베트남 출신 아내를 구타해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장모씨(47)에 대해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에 갇혀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면서 "장씨가 베트남 현지에서 아내를 만나는 과정을 보면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배우자가 될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도, 알고자 하지도 않고서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겨 배우자를 선택했다"면서 "장씨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타국 여성들을 물건 수입하듯 하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남녀를 그저 한 집에서 같이 살게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됐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우리사회의 총체적 미숙함과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다"고 원정결혼의 폐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또 "경제대국의 허울에 갇힌 우리는 19살 고(故) 후안마이씨의 작은 소망도 지켜줄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이번 사건이 장씨에 대한 징벌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며 "타국 사람과 결혼해 이역만리 땅에 온 뒤 단란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한 채 살해돼 짧은 인생을 마친 후안마이씨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무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상준 부장판사는 재판 말미에 "한국사회의 야만성에 대해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구하는 심정이었다"며 "피해자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판결을 내리게 된 게 못내 안타깝다"고 말했다.

피해자 후안마이씨는 2006년 12월 베트남 현지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장씨를 소개받고 당일 결혼식을 올린 뒤 작년 5월부터 한국에서 함께 살다가 장씨의 폭행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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