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꽃 `이스라지'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꽃 `이스라지'
  • 우래제 전 충북 중등교사
  • 승인 2024.04.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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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우래제 전 충북 중등교사
우래제 전 충북 중등교사

 

몇 년 전 어느 식물원에서 이스라지를 처음 보고 그 고운 자태에 푹 빠져 버렸다. 흰 바탕에 연분홍 립스틱이 옅게 번진 듯한 색으로 물든 단아한 꽃잎은 꽃말처럼 `수줍음'을 타고 있는 듯했다. 오랫동안 헤어진 연인을 만난 듯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스라지가 어느 나라 식물이지? 우리말은 아닌 것 같고 외국에서 도입한 종인가? 도감을 찾아보니 우리나라가 원산지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이런저런 이유로 또 꽃이 좋아 십몇 년 동안 산을 찾았는데 이스라지가 우리나라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니. 물론 모든 자생종을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리 보기 어렵지도 않은 데 이렇게 가슴에 와 닿는 꽃을 이제야 보다니 더 속상했다. 석삼년을 살고도 시어머니 성을 모른다더니 내가 꼭 그 꼴이구나.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 이 들길 여태 걸어 왔다니 //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 (무식한 놈, 안도현)

시인이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 못한 것은 관심이 적어서 그렇다 하지만 식물에 특히 자생식물에 관심이 있다는 내가 이스라지를 못 보았던 것은 관찰력 부족 탓이다. 앵도나무와 아주 비슷하여 산앵도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산앵도나무려니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 탓일 것이다. 나를 무식한 놈으로 만든 이스라지에 대해 알아보자.

예전에는 앵도를 `이스랒'이라고 하였다. 또 벚나무나 앵도, 산앵도처럼 이슬 같은 열매(씨앗)를 `이스랒'이라고 하였다. 그러다 벚나무 앵도, 산앵도와 구별하여 이스라지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참으로 정감있는 이름이다. 그래서 지금도 지방에 따라 이스라지를 산앵도라고도 부르는데 둘은 서로 전혀 다른 식물이다. 이스라지는 장미과 식물이고 산앵도는 진달래과 식물이라 집안이 다르다. 이스라지는 벚꽃이나 산옥매처럼 꽃잎이 5장이지만 산앵도는 꽃이 종 모양으로 생겨 밑으로 향해 피어 구별하기 쉽다. (참고로 앵두, 산앵두나무는 식물도감에 앵도, 산앵도나무로 표기돼 있다.)

이스라지는 키 작은 벚나무의 일종으로 벚꽃에 가까울 정도로 흰색 바탕에 연한 분홍빛이 도는 꽃을 피운다. 5월에 잎보다 먼저 또는 어린잎과 함께 잎 달리는 자리에 꽃이 핀다. 꽃이 지고 여름에 단단한 씨앗이 들어 있는 붉은색 열매가 달려 관상용으로도 좋다. 키는 1m 내외로 너무 크지 않아 정원이나 학교 화단에 심어도 좋은 나무이다. 잎 뒷면 맥 위에 털이 약간 나는 것을 털이스라지, 작은꽃자루에 털이 없고 꽃받침잎에 톱니가 있으며 씨방과 암술대의 밑부분에 갈색 털이 빽빽이 나는 것을 산이스라지라고 한다. 중국에서 들어온 산옥매도 이스라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스라지는 꽃받침이 붙어 있지만 산옥매는 뒤로 제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체꽃이 唐?之華/ 나부끼는데 偏其反而, / 어찌 임 생각하지 않으랴만 不爾思 /집이 너무 멀구나 室是遠而'여기에 나오는 당체꽃(?체-산앵두나무, 산이스랏나무)은 산앵도나무일까? 산이스라지일까? 산옥매일까? 아무러면 어떠랴.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꽃! 첫 만남부터 기르고 싶었지만 인연이 없었는데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더니 가까운 곳에서 한 그루 얻었다. 그리고 자주 가던 선배님 농장에서도 또 한 그루 분주 받았다. 산앵도라고 사서 길러 왔다는데 혹시 산옥매는 아닐테지? 서로 다른 이스라지이기를 기대하면서 시골집 언덕에 나란히 심었다. 꽃이 피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곁에 두고 자세히 보면서 나도 무식한 나와 절교하고 싶다. 그리고 몇 년 후 혹시나 했던 그 꽃은 산옥매로 확인되었고 아직도 이스라지를 곁에 두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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