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아닌 폐허 … 시린 가슴만
폐허 아닌 폐허 … 시린 가슴만
  • 이수홍 기자
  • 승인 2008.02.01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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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설 코앞 태안은 지금…
◈ 적막한 횟집 유조선 기름유출 사건 발생 56일째를 맞는 태안·서산 등 서해안 일대가 전국 봉사자들의 발길로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지만 사고 전 빼어난 경관 등으로 넘쳐나던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어민들의 고민이 깊어만 가고 있다.(사진은 태안군 모항의 한 횟집)

안면도·꽃지해수욕장 등 유명지 관광객 '발길 뚝'
횟집 휴업… 펄떡이는 횟감은 없고 어구들만 즐비
방제작업·대책위 활동에 설 차례상 엄두도 못내
어민 생계막막… 제 2의 태안살리기 캠페인 절실

"설이 다 뭡니까." 만리포 주민 김인숙씨(53)는 올 설은 조상께 차례상 올릴 엄두도 못내고 있다. 방제작업 하랴, 생계비 지원금 배분문제 챙기랴, 피해대책위 활동과 종종 서울 상경집회도 참가하랴, 눈 앞에 닥친 생계와 직결된 일들을 하기도 하루해가 짧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해를 넘겨 1월 마지막 날인 31일로 56일째를 경과하고 있다.

새해가 되면 설이 눈앞이라 설레게 마련인데 태안과 서산 등 충남 서해안 주민들은 다가온 설을 되레 황망스러워 하고 있다. 조상을 뵐 낮이 없어서다.

기자는 기름 폭탄을 맞은 태안지역 해안가를 따라 주민들의 삶을 잠깐 엿보기로 했다.

지난 29일 해안가 전체가 기름을 뒤집어 썼던 만리포 해안가는 언제 기름폭탄을 맞았었냐는 듯 대부분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후유증은 심각하다. 해수욕장 단지내 숙박업소와 횟집 등은 전염병이라도 쓸고 간 듯 사람의 발길이라고는 아예 없다.

15년째 횟집을 하고 있는 김모씨(47)의 수족관은 텅 비어 며칠 전 내린 눈이 쌓인 채 방치됐고, 주인도 집을 비우고 없었다. 옆집도 상황은 마찬가지. 평소 펄떡거리는 신선한 횟감은 사라지고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어구들만 뒹굴고 있다.

옆동네 모항항도 사정은 똑같다.

5년전 20억원을 들여 모텔과 펜션단지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55)는 "해마다 연말과 연초에는 예약손님들로 붐볐는데 사고 이후로는 예약은커녕… 은행이자 갚을 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염치 없지만 이제부터는 언론들이 앞장서 캠페인을 전개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태안의 기름폭탄에 대한 잇단 보도로 태안에 가면 기름냄새만 나는 곳으로 각인돼 사람들이 아예 발길을 끊는 것 같아 아쉽다"며 "이제 태안은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복구가 된 만큼 언론이 앞장서 제 2의 태안살리기 캠페인을 전개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우리나라 몇 안될 만큼 빼어난 경관을 배경으로 펜션단지가 즐비한 안면도지역을 찾기 위해 태안시내에서 안면도 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평소 같으면 외지 차량으로 꽉 메웠을 이 도로는 한산했다.

안면도 연륙교 다리 검문소 근무자는 "기름유출 사고후 안면도를 통과하는 외지차량은 손 꼽을 정도로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안면도 꽃 박람회장으로 유명해진 꽃지에 들어선 지역 최고의 시설로 항상 예약없이는 출입이 어려웠던 오션캐슬도 휴업상태나 마찬가지.

이곳 관리자는 "그 동안은 손님 유치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는데 지금은 오라오라 해도 손님이 없어 식당과 객실관리 직원들을 정리할 만큼 80% 가량 매출이 떨어져 큰 걱정이다"고 했다.

꽃지주변과 대하축제로 유명한 백사장 100여 곳 횟집타운은 절반이 넘게 문을 닫았다. 이 곳에서 만난 횟집 주인 최모씨(46)는 "주방과 서빙 등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올 1월부터 문을 닫았다"며 "다른 횟집들도 문을 언제 닫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풍 펜션과 빼어난 경관 때문에 연인들의 사랑을 그리는 드라마 촬영장으로 유명한 황도 펜션단지는 폭격을 맞은 듯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5년째 이곳에서 펜션단지를 운영중인 문모씨(53)는 "지난해 10월 빚을 내 시설확충 공사중인데 지난달 공사를 중단하고 말았다"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안면도 펜션업계는 고사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지금까지 국민적인 방제활동 자원봉사가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태안과 안면도를 다시찾는 범 국민운동이 있어야 근본적으로 회생할 수 있다"며 "사람들이 찾지 않는 안면도는 죽은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곳곳에 있는 태안을 찾아 주는 게 태안을 살리는 진정한 자원봉사다"고 강조했다.

서산시의 대표적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있는 간월도와 창리 포구 50여곳의 횟집도 개점 휴업상태였다.

결국 태안과 서산의 해안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지지 않으면 기름 폭탄의 검은 눈물보다 사람이 그리운 피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영원한 폐허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각급의 기관, 종교 및 사회단체부터 앞장서 각종 회의나 모임 등을 태안과 서산에서 개최하는 등 태안 살리기 차원의 새로운 형태의 자원봉사 물결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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