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체온
따뜻한 체온
  •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 승인 2024.04.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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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몇 년 전, 암에 걸린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화면 속 그들이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같이 웃었으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방송을 보는 내내 한가지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참으로 귀하구나, 내가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큰 병에 걸리지 않은 건 정말 행운이구나,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병에 걸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구나.'와 같은 생각들. 그렇지만 이런 생각들조차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출근을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하는 순간부터 내일도 똑같이 반복될 일상에 한껏 답답해진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삶은 찰나의 기쁨과 환희를 제외하곤 늘 피곤했고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방송에 출연했던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떠났을지도 모를 만큼, 혹은 남은 유족 중에 어린애였던 자녀들이 성장해 죽음의 의미를 깨달았을지도 모를 만큼. 시간은 늘 그랬듯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단호한 태도로 그저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조금은 서늘한 기운을 뿌리며. 그 서늘한 기운에 취해 일상이라는 배를 타고 둥실둥실 떠다니던 어느 날,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딘가 익숙한 얼굴을 휴대전화 화면으로 보게 되었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이제야 고요해진 거실 한 편 덩그러니 비어 있는 소파에 멍하게 앉아있다가 기분이나 전환할까 싶어 누른 유튜브에서 보여준 얼굴이었다. 한눈에도 죽음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는 빛이 사라진 얼굴이 손짓하는 듯 영상을 클릭하고 5분이나 흘렀을까,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이 얼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석 달도 채 안 된다는 판정을 받고 오열하던 그 얼굴. 몇 년 전 꼬박꼬박 챙겨보던 다큐멘터리 속 그 얼굴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우는 얼굴을 보며 다시 또 울었다. 그리고 그녀의 영상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관 영상으로 나온 다음 사연을 보며 울고, 그다음 사연을 보며 또 울고, 그렇게 몇 시간을 계속 울었다. 모두가 입을 맞춘 듯 영상 속 죽음을 앞둔 그들은 엄마 혹은 아빠 없이 살아갈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곧 이 세상을 떠날 사람은 본인들임에도, 아이를 향한 걱정이 죽음이 가져다준 두려움을 집어삼킨 듯이 아이들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며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부모란 얼마나 가엽고 짠한 존재던가.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나 자신은 늘 뒷전이고 아이를 위한 삶을 살았음에도 끝끝내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불쌍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도 한낱 사치에 불과하니 말이다.

한껏 눈이 벌게져서야 핸드폰을 내려놓으니 펑펑 울어서 조금이나마 개운해진 듯했던 마음이 다시금 무거워졌다. 그동안 아이에게 무심히 던진 모진 말들이 하나 둘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뜻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살게 해주고 싶지만 사회적 규범이라는 큰 틀 안에 갇혀 “이것도 하지 마라, 얌전히 있어라,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라며 끊임없이 아이를 몰아붙인 나날들. 다른 사람은 털끝 하나라도 건들까 두려워하면서 내 새끼 가슴은 사정없이 벅벅 긁어댔던 기억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만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애원하던 그녀들이 몇 년 전에 보여주고 말해주었는데도, 그 귀한 말을 가슴에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엄마라고 하기엔 너무도 모자란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사랑하는 마음과 미안함과 다짐을 두 손에 가득가득 쥐고 아이의 얼굴부터 손과 발까지 쓰다듬어 본다. 아이의 따뜻한 체온이 유난히 눈물겨운 이 밤이 애처롭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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