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여지가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4.04.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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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총선 패배 후 비서실장을 통해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후 했던 “국민은 무조건 옳다. 어떤 비판에 대해서도 변명해선 안 된다”는 말을 기억한다. 이 말이 곧바로 기만의 수사였음이 들통나고, 어떠한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는 불통의 시간이 이어졌음도 기억한다. 대통령의 패배의 변이 어떤 울림이나 공감은커녕 일말의 연민조차 얻지 못하는 이유이다.

너나없이 여당 대패의 요인으로 대통령의 불통과 오기의 정치를 꼽는다. “선거기간 만이라도”라며 가슴을 졸였던 여당 후보들은 거듭 터지는 대통령실 발 악재에 진저리를 쳐야했다. 피의자 신분인 전 국방장관의 주 호주대사 임명과 출국 강행, 대통령실 참모의 회칼 발언, 본인의 875원 대파 발언 등은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국민의힘 주변을 서성대던 유권자들의 미련을 접게했다. 참혹한 결과에 대해 대통령이 최소한의 책임의식이라도 느꼈다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수준의 상투적 메시지에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론은 일제히 대통령에게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수용해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라고 촉구한다. 재판받는 피의자라며 그동안 겸상을 거부해온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만나 협치의 물꼬를 트라는 주문도 이어진다. 대통령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 108석을 제외한 나머지 192석에서 대통령을 편들 우군은 없다. 국민의힘에서 파생된 개혁신당(3석) 조차 반윤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야당이 연대를 하든, 개별적으로 움직이든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거야의 파상공세를 피할 수 없게 됐다. 12석을 얻어 제3당으로 부상한 조국혁신당은 선거 다음날 대검찰청을 찾아 김건희 여사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총선에서 참담하게 심판당한 대통령의 시련이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닥친 더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도 여당이 친위대를 자처할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벌써부터 당내에서 대통령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대오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용산의 출장소'라는 오명을 더 이상 감내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의원 8명이 야당에 동조하면 탄핵도 가능해진 상황에서 당이 대통령실에 예속되는 이른바 `수직적 당정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야당은 김건희 여사 특검, 채상병 사망 진상조사. 이종섭 전 호주대사 특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등을 차례차례 밀어붙일 기세다. 대통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거부권은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로부터 부적절 판정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여당이 무조건 박자를 맞춰줄 가능성이 낮다는 말이다.

압도적 여소야대 구도가 연장되며 정부가 역점 추진하는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은 물론 저출생, 양극화 등 국가존망이 걸린 과제가 표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거대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는 대통령과 여당의 변명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게 됐다. 여권의 발목 타령에도 불구, 유권자들은 다시 현격한 격차의 여소야대 판세를 만들었다. 거야가 문제가 아니라 집권세력의 독선과 무능이 문제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라 할 레임덕은 불가피해졌다. `죽어도 마이웨이'를 고수하며 임기를 허송하는 식물 대통령이 될지, 벙커를 탈출해 당이 훗날을 도모할 발판을 구축한 대통령이 될지는 오로지 대통령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달렸다. 후자가 되려면 야당에 대한 적대적 인식부터 바꾸는 게 우선이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범죄자 집단으로 규정하고 역심판론을 폈다. 그 `범죄자 집단'은 심판 대신 선택을 받았다. 대통령이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고 협조를 구하라는 유권자의 엄명이 떨어진 격이다. 이를 거스르면 더 가혹한 심판대에 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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