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집어 본 인간들
세상을 뒤집어 본 인간들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4.04.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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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근 100일 동안 몸살을 앓게 했던 선거가 끝났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보수도 싫고 진보도 싫은데 둘 중에서 고르라고 하니 곤혹스럽다. 신기하게도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보수는 진보를 진정으로 싫어하고 진보는 보수를 증오에 가깝게 싫어한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지역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쪼개져서 지긋지긋하게 싸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뿌리를 철학적으로 캐고 들어가 보면 세상을 거꾸로 뒤집은 인간들이 발견된다. 서구에서 현대적 의미의 진보 세력은 마르크스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거꾸로 선 철학사를 바로잡은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럼 애초에 누가 철학사를 거꾸로 세웠을까? 그건 플라톤이다. 거꾸로 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플라톤은 현실에서의 삶을 문제가 많다고 봤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건 동굴 속에 갇혀 있는 노예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실을 떠난 이상적인 이데아의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과 이상의 가치 위계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현실에서 이상의 세계로 나가는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이 수학이다. 덕분에 우리는 반강제적으로 수학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수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이다. 수학적 질서는 현실 세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원은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려진 원은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이는 건 점이 아니다. 점은 크기는 없고 위치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수학적 질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곧 비현실적인 세상, 곧 이상(ideal)에서만 성립한다. 이런 식으로 플라톤과 그의 후예인 데카르트는 현실과 이상의 가치 위계를 뒤집어 놓는다. 우리는 수학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알게 모르게 이들의 영향을 받아왔다.

마르크스는 숭고한 이념이나 정신적 가치(철학)보다 먹고사는 문제(경제)를 최우선에 놓는다. 플라톤 이래로 `인간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생각하는 존재'였다. 무엇을 생각하냐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수학적 세계처럼 이상적인 세계이다. 플라톤 이래로 서양 철학은 순수 영혼, 순수 사유, 순수 존재의 세계를 지향한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무엇보다 먼저 뼈와 살과 피를 가진 구체적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본다. 뼈와 살과 피를 가진 구체적 인간은 일단 먹고살아야 한다. 그래서 먹고사는 행위, 곧 경제가 모든 것의 토대가 된다. 그래서 그는 철학 대신에 정치 경제학을 학문의 중심에 놓는다. 순수 영혼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한 플라톤의 생각을 뒤집어서 마르크스는 먹고사는데 핵심적인 노동이나 실천을 세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원천으로 본다. 그는 2,000여년 서양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던 플라톤의 사고방식을 뒤집어 현대 세계를 이념적으로 양분해 놓는다.

우리 사회를 양분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은 그 뿌리를 캐고 들어가면 세상을 뒤집어 본 플라톤과 마르크스가 있다. 플라톤이 세속적인 인간들의 오염된 삶을 구원하기 위해 순수영혼을 중심으로 세상을 뒤집어 봤다면 마르크스는 뼈와 살과 피를 가진 구체적인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해서 플라톤이 그린 세계를 뒤집는다.

이들이 뒤집어 놓은 세상이 뒤집히기 이전의 인간 삶의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플라톤의 동굴도 아니고 마르크스가 봤던 자본주의 태동기도 아니다. 우리 시대, 우리의 삶은 진보 vs 보수라는 낡은 프레임을 벗어던질 때가 되었다. 기성세대들에 할 말 하는 젊은 세대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멀지 않은 장래에 새 프레임이 나올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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