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나물
벼룩나물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4.04.11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오른쪽 어깨가 탈이 났다. 복수초가, 노루귀가 피었노라 꽃소식을 들으면 몸이 달았다.

쉬어家의 땅속도 새싹을 올리느라 법석일 텐데 아픈 어깨 때문에 들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전전긍긍만 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봄꽃이 한창이라는 소식에 참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겨우내 불을 넣지 않은 냉골인 방에 보일러를 틀어 온기를 불어넣고 마당으로 나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작년 가을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앙상한 마른 꽃 가지들이 바람에 무심하게 흔들린다.

너희들을 어찌하랴. 새싹들이 마른 가지들을 밀어내며 힘겹게 돋아나고 있었다.

더는 모른 체 할 수 없어 창고 문을 열고 전지가위와 낫을 찾아 들었다.

나무들 가지치기를 하고 마른 꽃 가지들을 잘라 냈다. 한참을 정신없이 하다 보니 땀이 솟고 어깨가 욱신거린다.

잠시 숨을 돌리려 원두막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맞은 편 산자락 나무들의 우듬지에 푸른빛이 아른거린다. 얼마 후면 새싹이 돋아나리라.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며 움직이는 자연은 언제나 경이롭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 인지라 별반 다르지 않은지 주변의 언니들은 “한 살만 더 먹어 봐라. 몸도 마음도 달라지리니.” 하더니 요즘 들어 그 말뜻이 뼛속에 스민다.

정말 그랬다. 체력도 예전만 못해 조금만 힘들어도 금세 지쳐 늘어진다.

여기저기 아픈 곳만 늘어나고 누군가는 삶의 훈장이니 너무 서러워 마라 하지만 가끔은 서럽다. 특히 할 일이 태산 같은 요즘 같은 날에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어깨가 야속하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사람이 검불을 헤치며 돋아나는 봄날의 새싹과 같을 수는 없는 일, 더 이상 무리를 하면 안 된다니 쉬엄쉬엄 달래가며 사는 게 그동안 부려먹기만 한 몸에 대한 예의 아니겠는가.

일은 접어두고 봄나물이나 뜯을 요량으로 칼을 들고 자작나무를 심어 놓은 곳에 앉았다. 볕이 좋은 곳이라 그런지 벼룩나물이 제법 푸릇푸릇 돋아났다.

남편이 봄만 되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나물이다. 친정엄마는 벼룩나물을 `별금다지'라 불렀다. 남편은 `불금다지'라고 부른다.

나도 엄마처럼 `별금다지'라 부른다. 왠지 그리 부르면 엄마가 옆에 있는 것처럼 정겹게 느껴지기도 하고, 벼룩나물에 별빛이 내려앉아 새싹에 힘을 실어주는 것만 같다.

벼룩나물은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낮은 포복으로 영토를 확장 중이다.

다보록하게 납작 엎드린 이 녀석들은 어느 곳을 도려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자칫 칼끝이 어긋나면 줄기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버린다.

조심스레 칼끝을 들여 밀어 뿌리라 짐작되는 곳을 도려낸다.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싱그런 초록빛으로 자라나는 벼룩나물의 낮은 포복이 오늘은 부럽다. 뿌리의 흙과 검불을 털어내고 줄기를 조금 뜯어 씹어 보니 흙내음 섞인 풋내가 입안 가득 퍼진다.

남편은 이 진한 풋내가 좋아서 봄만 되면 생각이 난다고 했다. 아마도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그리워서 더 간절한 것은 아닐까. 한 끼로 충분할 만큼 뜯고 언덕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편백 나무 아래 돌나물도, 쑥도 제법 자라 며칠 후면 내가 좋아하는 쑥국도 끓여 먹을 수 있겠다.

오늘은 벼룩나물에 무생채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 식탁에 올려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