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역사 속으로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4.04.0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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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오랜만에 지인 다섯이 밥을 먹었다. 그간의 개인사가 많았다. 지인의 아들이 호주로 요리유학을 다녀와 서울 문래동에 음식점을 개업했단다.

마침 용산 국립박물관에서 특별전을 한다니 박물관에도 가고 밥도 먹고, 문래동골목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입을 모았다. 빼는 사람 없이 그 자리에서 날을 잡았다. 망설임이 없다는 것은 시간적 여유와 자유롭다는 것이다.

용산 국립박물관 “탕탕평평 글과 그림의 힘”특별전 제목이다.

올해가 영조즉위 300주년 인만큼 영조와 정조에 관련된 시대를 주 무대로 특별 전시회를 했다.

역대 임금 중에 영조와 정조의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글과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임금이 관직에 등용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나라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정치를 올바로 이끌기 위해 탕평정치를 한 것에 의미를 둔 것 이다.

탕평책은 조선 말기, 영조와 정조가 당쟁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당파 간의 정치 세력에 균형을 꾀하던 정책이다.

사납게 짓고 있는 삽살개 한 마리, 재미있는 그림이 있다. 영조는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드러내며 아무 때나 짖는 삽살개를 탕평에 반대하는 신하의 모습으로 빗대었다고 한다.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시끄러운 것인가 보다. 요즈음 tv만 틀면 국민을 위해 당신의 한 몸 희생하고자 핏대를 세우는 정치인들로 넘쳐난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고개가 갸웃뚱 해 진다.

화성으로 가는 어가 행렬, 이 반차도에는 인물만도 6400여명이 된단다.

몇 일간의 어가행렬을 몇 폭의 병풍으로 남겼다. 그림을 자세히 보니 감탄이 절로난다. 수많은 말과 사람들의 표정이 같은 것이 없다고 하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더라면 그 시대의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박물관에서 글과 그림을 보다보니 점심때 가 훌쩍 지났다. 아쉬움을 남기고 전철을 타고 문래동으로 갔다.

경제 강국의 중심 서울, 중심은 당당하고 활기차다. 높고 화려한 빌딩과 수많은 사람들, 어벙한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촌티 날까봐 무심한 듯 고개를 고추 세우보지만 긴장되는 건 숨길 수가 없다. 서울은 여전히 나에겐 낯선 곳이다.

“그리고 문래” 잘생긴 쉐프가 만들어준 퓨전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엄마지인들이 왔다고 봄동 겉절이와 파김치를 곁들여주는 쎈스 까지 보인다.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을 만나니 든든하고 뿌듯하다.

문래동은 오랜 세월 철공소로 유명한동네다. 아직도 철공소가 많이 남아있다. 철공소에서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 해 가는 중이다. 동행인이 그 변해가는 모습이 동화 속 같다고 한다.

한 시절 황금기를 누렸던 문래동 철공소는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는 미래도 없다는 말이 있다. 민족이나 개인이나 지나 온 시간을 잊지말아야할 것이다.

과거를 토대로 미래로 가는 것이다. 옛사람의 생활은 기록으로 남기고 쓰던 물건은 박물관에 있지만 전해 내려오는 정신과 글의 힘, 그림을 보면서 그 지혜와 가르침으로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다리가 뻐근해 질 때 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대의 변화를 느껴 보았다.

지인들과 함께한 용산 국립박물관 관람, 문래동 골목여행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에 좋은 경험이었다. 또 마음이 심란을 떤다. 생각해보니 서울 다녀 온지가 벌써 달포 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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