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정원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정원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4.04.0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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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정원에 관한 한 조금 과하다 싶은 호사를 가끔씩 누린다.

올해는 봄꽃을 미리 보러 남쪽 미야자키로 갔다. 미야자키는 연평균 기온이 18℃ 전후이고 연 강수량도 2000mm가 넘으며, 일조시간도 연 2000시간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식물이 살기 좋은 곳이다.

서리가 관측되기도 한다지만 이 도시의 남쪽은 서리가 내리지 않는 무서리 지대라 월동 필요 없이 식물을 가꿀 수 있어 정원가나 식물 애호가에게 천국 같은 곳이다.

정원 애호가들은 모이면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여 온갖 식물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특히 새로운 모양이나 색깔을 가진 식물, 또 질감이 특이한 식물을 보면 모두 자기 정원에 옮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예쁜 것들은 모두 추위에 약해 대부분 화분에서만 키울 수 있다. 아쉬워하며 매만지다가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야자키는 그런 식물들을 마음껏 마당에서 가꿀 수 있다니 그야말로 축복 아닌가?

미야자키는 또 시민정원사 활동이 활발한 도시다. 코로나19가 만연하던 때에도 시민 건강을 위해 꽃을 심고 가꾸는 일을 선택할 만큼 정원 친화적이다.

물론 정원 친화적 정책 방향을 이끌어낸 데는 시민의 삶과 의식 그리고 취향이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정원 여행에서 만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정원(木漏れ陽のガㅡデン, 키모레요노 가든)'은 특별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정원'은 자연과의 공생, 웅대한 소나무 숲을 살리면서도 계절의 변화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경관 그리고 다 같이 만드는 정원을 모토로 시작했다.

소나무 아래에선 소나무도 안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정원에서는 소나무 바늘잎 사이로 적절하게 비쳐 들어온 햇살 아래 여러해살이 화초와 구근들이 저마다 색으로 꽃을 피우며 자연스런 꽃밭을 이룬다. 상록 침엽수인 소나무와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식물을 함께 배치한 것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정원은 소나무 숲 아래 꽤 길게 펼쳐져 있다. 꽃과 소나무를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사람이 다니는 길을 꽃보다 높게 덱(deck)으로 설치하였다. 그러니까 높게 자란 소나무, 그 숲 아래 구불구불한 덱 그리고 덱 아래 꽃밭이 층을 이룬다. 정원은 자세히 보면 부정형의 구역이 나누어져 있는데, 사각이나 삼각의 정형의 구획이 아니라 얇은 끈으로 오솔길을 내듯 공간을 나누었다. 그 나뉜 공간을 자원한 시민들이 각각 맡아 시에서 배분한 구근과 초화류를 심거나 자신이 가져온 구근이나 씨앗을 뿌렸단다.

그러니 꽃밭에는 튤립, 수선화, 아네모네, 쑥부쟁이 등 여러 초화가 어우러지고 색깔도 종류도 다양하게 형형색색 꽃을 피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바로 그 다양함에 있듯이 키모레요노 정원은 자연을 닮았다. 그래서 오래 보아도 편안하고 여러 번 보아도 새롭다.

꽃밭에는 잡초들도 적지 않다. 잡초는 흡사 영국의 초지 정원 즉 메도우 가든(Meadow garden)을 떠오르게 하는데, 잡초에서 피어난 작은 꽃들도 이 정원의 중요한 요소이자 가족이다.

사람이 심은 꽃을 돋보이게 하려고 잡초를 뽑지 않아도 되는 정원,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모르지만 잡초 역시 정원의 일원이 되는 열린 정원, 누구나 심고 가꿀 수 있는 사람과 자연의 정원이 바로 키모레요노 정원의 매력이다.

우리나라도 꽃과 나무, 정원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우리도 자연과 공생하는 정원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꽃 멀미를 하다 집에 오니 우리 마을의 봄은 이제 한창이다.

당분간 행복한 꽃 멀미는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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