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억할 때까지
몸이 기억할 때까지
  •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 승인 2024.04.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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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교정에는 이미 봄기운으로 가득하다. 볼을 스치는 바람이 아직 서늘함을 간직하고는 있지만, 교정에서 느끼는 바람에는 상큼한 향기가 배어 있다.

카페에 모여서 삼삼오오 책을 펼쳐놓고 스터디에 열심인 청춘들, 벤치에 앉아서 정답게 이야기 나누며 밝게 웃는 청춘들, 가슴에 책을 안고 강의실을 찾아 분주하게 이동하는 청춘들, 연습실에서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노래하는 청춘들, 그리고 70이 넘어서도 젊은 날 이루지 못했던 꿈을 찾아 다시 용기를 내어 캠퍼스에 들어온 늦깎이 청춘들까지…. 교정에서 만나는 남녀노소 모두가 지금 자신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청춘의 시간일 테니, 교정에는 그야말로 사람꽃 천지인 셈이다. 그러니 교정에서 느껴지는 바람이 어찌 상큼하지 않겠는가?

`연주와 비평' 시간, 새 학기 들어 궁금 반 설렘 반으로 일찍 수업에 들어갔다. 새로 들어온 후배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예상했던 것처럼 스무 살 풋풋한 청춘들부터 머리가 하얀 늦깎이 청춘들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후배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이들도 아마 작년 이맘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설렘 반, 어색함 반으로 교실로 들어섰겠지?

그중에는 반갑고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지난해 나처럼 2월에 정년퇴임을 하고 다시 대학으로 들어온 교장선생님, 내가 현직에 있을 때 자신은 퇴임하면 음악대학에 들어갈 거라고 귀띔해 주어, 나의 퇴임 이후 진로를 결심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고마운 선생님이시다. 아마 그 선생님의 퇴임 후 진로 계획을 듣지 못했더라면 작곡에 대한 어릴 적 나의 꿈은 펼쳐 볼 용기를 갖지 못한 채 영원히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새로 들어온 1학년 신입생 후배들을 위하여 과목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이제 내겐 줄여서 `연비'라는 용어로도 익숙하지만, 후배들에게는 아직 `연주와 비평'이라는 과목명조차 어색하고 생소하리라.

“음대생은 머리로 기억해야 할 게 있고, 몸으로 기억해야 할 게 있어요.” 교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부터 말씀을 시작하셔서 어떻게 음악을 해야 할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머리로 기억해야 할 것은, 음의 높이예요. `솔' 음이 어떤 높이인지, `도' 음이 어떤 높이인지, 음의 높이는 머리로 미리 생각하고 기억해야 해요. 그런데 음대생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몸으로 기억하는 거예요. 아무리 연주하는 방법을 머리로 잘 이해하고 있어도, 몸이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연주를 할 수 없지요. 무대에 서면 누구나 두렵고 떨리죠. 그렇지만 손이 덜덜 떠는 상황에서조차도 몸이 기억해서 그냥 반응할 수 있도록 음대생이라면 연습을 하고 또 연습을 해야 해요. 백 번이건 천 번이건 몸이 기억할 때까지….”

돌이켜보니 지난해 나는 `꽃구경', `대왕 참나무', `울 엄마 차여사님' 등 그래도 나름 몇 곡의 노래를 만들어 학우들과 함께 신나는 시간을 보냈었다.

이제 새로 시작된 봄, 지난겨울 방학 동안 새롭게 작곡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시작으로 올해도 지난해처럼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려면 몸이 기억할 때까지 연습을 하고 또 연습을 해야겠지? 교수님의 말씀처럼 음대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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