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멍
팝멍
  •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 승인 2024.03.3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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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예상치 못한 손에 의해 던져져 연잎 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돌에 맞은 개구리처럼 마치 내 영혼이 맞아 죽은 듯 숨이 헐떡거려지는 그런 날. 모든 건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고,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고, 하지만 가장 괄시받는 대상도 사람이란 걸 알기에 항상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너를 존중하려 노력했지만, 나의 의지와는 달리 내가 힘이 없다는 걸 너무도 아프게 깨닫게 되는 그런 날. 나쁘지는 않지만, 결코 좋지도 않은 기분으로 들어선 집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타닥. 타다다닥. 타다닥.

소리가 들리는 곳은 딸의 방이었다. 환하게 켜진 방 한가운데서 딸은 겁먹은 다람쥐처럼 몸을 웅크린 채 손으로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누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만하라고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음과는 다르게 점점 그 소리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금살금 아이에게로 다가섰다.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아이 앞에 화려한 무지개색으로 채색된 고무 같은 것이 보였다. 그런데 보통 고무가 아니다. 비눗방울 같은 원형의 모형이 조회대 앞에 서 있는 아이들처럼 일렬종대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큰 직사각형을 꽉 채우며. 그리고 그 원형을 딸이 손가락으로 누를 때마다 바로 그 소리가 들려왔다. 타닥. 타다닥.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그제야 나의 기척을 느낀 딸이 뒤를 돌아보고, 눈이 마주쳤다. 엄마 뭐하냐는 질문에 너는 뭐 하고 있냐는 말로 답을 하자, 엄마는 팝잇을 모르냐는 핀잔 아닌 핀잔이 날아왔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기에 아까부터 계속 이걸 왜 하고 있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아이가 기가 막힌 말을 했다. 팝잇을 하고 있으면 하루종일 받은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행위를 무턱대고 부정할 수는 없기에 “그렇구나”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아이의 제안이 들려왔다. “엄마도 한번 해봐.” 당장에라도 “엄마는 초딩이 아니야, 그런 거로 풀릴만한 스트레스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입술 끝에서 걸려 나오지 않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가락은 이미 팝잇이라고 불리는 장난감 위에서 화려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노래방에 가서 악을 쓴다든가, 음악을 엄청나게 크게 틀어놓고 듣는다든가, 술을 진탕 마신다든가, 등등의 많은 에너지를 쏟는 행위가 아닌 정말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까닥까닥하고,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전부인데,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머리가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황당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이번엔 딸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거봐 엄마, 스트레스가 풀리지?”라고 물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한동안 팝잇 앞에서 쭈그려 앉아있었다.

특정 장난감이 유행하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내가 그 장난감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 이유 역시 존재한다. 각기 다른 이유가 만나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내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아이 방에서 몰래 팝잇을 꺼내오는 모습으로 날 우롱한다 할지라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분노가 차오르는 어떤 일을 조금이라도 나에게서 밀어낼 수 있다면 난 괜찮다. 또한 유난히 고요하게 느껴지는 이 밤에 어울리지 않는 타닥거림이 곤히 잠든 누군가를 깨우는 것이 아닌, 나같이 심란한 마음에 잠 못 드는 누군가의 사정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겠다.

타닥타닥. 불멍도 아닌 팝멍이 가득한 밤이 겨우겨우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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