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가치 ‘금(金)'
변하지 않는 가치 ‘금(金)'
  • 이윤용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 주임연구원
  • 승인 2023.12.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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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이윤용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 주임연구원
이윤용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 주임연구원

 

최근 달러의 약세,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 등 다양한 요인이 반영되어 국제 금값이 상승함에 따라 금에 대한 국내 거래 역시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금(金)은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공하는 것 역시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되고 있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있어 소중한 자산이자,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 등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자산 증식을 위한 수단으로 주식, 코인, 부동산, 외환거래 등 다양한데, 그 중 일부는 금반지, 금팔찌, 금귀걸이 등 금공예품을 사들이기도 한다.

이외에도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서 1년이 지나 돌잔치를 할 때 금반지를 선물하여 건강을 기원하며, 쉽게 부식되지 않는 성질을 이용하여 치아 보철물로도 사용하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다는 금의 특징 때문에 용처도 다양하다.

더구나 현대사회에서 현금처럼 통용되는 금은 중요한 일을 기념하거나 생일을 맞은 이에게 선물로 주는 풍습도 생겼다. 이와 같이 금은 여러 가지 목적으로 우리 곁에 가깝고도 멀리 존재하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왕족, 귀족과 같은 고위층이 사망한 이후에는 생전에 착용하였던 장신구나 무기 등을 함께 묻으며 영원을 바라기도 하였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다수의 금장식들이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란 점만 보아도 금이 상징하는 의미는 최고의 권력자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최근 제천 교동에서도 확인되었다.

2018년 제천시는 교동에 근린공원을 조성하기 위하여 문화재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시대의 무덤군을 확인하였다.

교동 고분군이 `신라의 영향권에 포섭되어 간접적 지배를 받은 집단'의 무덤이라는 전제 아래, 의성 금성산 고분군과 유사하기도 하다. 의성 양식 토기가 경북 북부로 확산되는 점에서 신라 북쪽 외곽의 거점적 역할을 담당했다면, 교동 고분군은 신라 동남부의 거점적 역할을 수행하였던 집단이었다.

교동 고분군 중 삼국시대, 정확히는 신라 무덤에서 고구려 금귀걸이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고구려 금귀걸이는 1960~70년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천 회죽리, 청원 상봉리 출토품을 구입한 것과 2000년대에 청원 남성골산성(현재 세종시 부강면)에서 확인된 것 이후로 굉장히 드문 사례이다.

당시 어떠한 연유로, 신라 무덤에 고구려 금귀걸이가 묻히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옛 제천 지역이 고구려 내토군(奈吐郡)에 속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금귀걸이가 7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는 점과 진천 회죽리, 중국의 집안에 위치한 마선묘, 평안남도 대동군 등에서 출토된 것과 형태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역사적 상황을 가늠 해야할 뿐이다. 역사연구자들의 과제로 남겨져 있지만 고대와 현대사회로 이어지는 변화에도 금에 대한 인식은 시대를 뛰어넘어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금의 변하지 않는 속성은 자본으로서 가치, 고고학적 수수께끼 등 다양한 이유로 아직까지도 우리를 목마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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