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는 것!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의식이다. 과거의 편린을 모아 지금을 정리하는 것이니 현재를 위한 것이고, 내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으려는 방편으로 삼으니 `되돌아 봄'은 분명 미래로 향하는 길이다. 그 길 중심에는 `타인이 되어 나를 보는 내'가 있어야 한다.
관조하듯 나의 삶을 본다는 것, 선인들의 글에도 있듯 쉽지 않다. 오죽하면 고대 그리스 아폴론 신전에 `너 자신을 알라!'고 새겨 넣으며,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에 대해 먼저 인지하길 경고까지 했겠는가. 그 힘든 길, 시간이 새겨놓은 지혜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책과 함께 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사이의 길을 따라 산책
책을 펼쳐 그 문을 열고 산책을 나서면 먼저 다녀간 이들과 지금을 살아 내고 있는 이들의 낯선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중 나의 신념에 더하기를 하거나 빼기를 하며 의지를 다지게 하는 책에 대해서는 의미를 부여하고 `책 스승님'으로 삼기도 한다. 그 책의 내용을 어디까지 담을 수 있을까. 전부 기억해야 한다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취할 것과 버릴 것의 선택은 지난날 `나'의 습관과 앞날의 기대감에 적합한 기준을 적용하면 그나마 쉬이 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디로 가게 될지 아는 사람은 없다. 책 속의 주인공을 따라 어디든 가 보는 거다.
옛이야기 속에서 보편성을 찾기도 해 보고, 지금·여기·일상의 이야기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시인의 마음속에서 음률 섞인 단어 한 줌 집어 오고, 환상의 나라에서 용기와 해방감을 맛보며 주인공 따라서 가 보자. 그런다고 내가 서 있는 흐릿한 언저리가 금세 선명해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어디쯤 왔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의 텍스트들은 간혹 세찬 바람이 되어 내가 알고 있던 `믿음'을 흔들어 대기도 한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간 외면했던 이면을 마주하는 시간은, 작가와 대화 속에서 내일로 향하는 단초를 찾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미간에 힘 빼고 귀 기울이면 듣게 되고, 알게 될거다. 살아오며 내가 둘러친 울타리 안에서만 허둥댔음을 알게 될거다.
괜찮다며 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소리를 듣기도, 잘했다며 머리를 쓰담 쓰담 해 주는 손길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 힘을 받아 우리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만 삶이 어디로 가게 될지, 얼마나 멀리 가게 될지 알지 못한다. 허나 멀리 가려면 천천히 조금씩 가야 한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길에 우리는 글 텍스트가 있는 책, 삶의 시간과 지혜를 품고 있는 사람 책 등 여기저기에 꽂혀 있는 책을 만나게 된다. 등불을 켜고 그 책의 문으로 들어가 산책을 즐기다 보면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도 하고 무례하기도, 모호하기도 한 세계를 만난다. 그 길에는 지금을 사유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지만 다음의 때를 기다리는 세계도 있다. 그 세계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을 때도 있다. 그 세계는 긴 시간이 지나도 그 빛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모든 일에 갑자기 떠오르는 건 없다. 어딘가로부터 다가오고 있는 걸 모를 뿐이다. 다가오고 있는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지금의 내가 버리지 못한 책의 한 구절을 가슴 한편에 끼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기 위한 `나'라는 길을 느긋한 기분으로 한가로이 거닐어 보자. 그리하면 다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p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