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무설조각실
30. 무설조각실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7.08.20 0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속활자 전수교육조교 임인호씨
직지와 금속활자 우수성 불구 활자는 진심으로 봐야 눈에 보여


소   개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에 있는 무설조각실은 중요 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 전수조교 임인호씨 운영하고 있는 작업장이다. 금속활자와 목활자 등을 제작하고 있으며, 활자주조체험과 시연, 활자찍기, 밀랍에 글자새겨보기 등 체험이 가능하다.(문의 : 043-833-1876)

금속활자장 오국진 선생에게 전수받은 주조술


청주를 직지의 고장이라 부른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가 청주의 흥덕사에서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청주 운천동 택지개발 공사로 1985년 흥덕사가 확인되며, 직지의 간행장소가 극적으로 밝혀진 이 인연은 지난 7월 세계화를 위한 작업으로 직지특구 지정이라는 또 다른 시도를 ㄴ시작하고 있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금속활자본 직지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뿌리에는 어떤 가치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선 활자를 재현하고 있는 무설조각실을 찾았다.

▲ 활자가 제작되고 있는 주조이다.

청주에서 괴산·연풍으로 새로난 길을 따라 1시간 가량 가면 이화령고개와 조령산 휴양림으로 갈라지는 큰 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조령산 휴양림 길로 접어들어 20여분 더 올라가면 원풍리 마을 왼쪽 길가에 커다란 창고와 토담으로 지은 야트막한 집이 보인다. 간판대신 창고에 크게 쓴 무설조각실이 전부이지만, 이곳은 중요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 오국진씨로부터 유일하게 주조술을 전수받아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전수교육조교 임인호씨의 작업 현장이다. 옛 풍경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듯한 느낌을 주는 작업장은 크지는 않았지만 활자를 만드는 각자실과 주물을 녹여 활자를 만드는 주조실로 구분되어 있었다.

작업실로 들어서니 목활자 조각에 여념없는 임인호씨 등뒤로 나무와 금속으로 만든 손톱 크기의 활자가 책상 가득 펼쳐져 있었다. 하나 하나의 활자들이 고서의 행간을 이루며 나열된 모습은 정갈하면서도 세심한 손길이 느껴졌다.
▲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전수교육조교 임인호씨의 작업현장.

"10년 동안 매일 청주를 출퇴근하며 선생님께 금속활자 주조술을 배웠어요. 일반인들은 다 같은 활자라고 생각하지만 서각과 달리 금속활자는 금속활자에서 원하는 각이 따로 있습니다. 더구나 쇠를 다루는 기술과 공정 등 많은 기술을 요하는 금속활자는 글씨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과학과 기술을 총망라하여 만들어낸 종합예술품입니다."

서각을 하던중 우연히 오국진 선생을 만나 97년부터 문하생으로 금속활자를 접한 그는 금속활자 주조술을 배우지 않았다면 벌써 다른 길로 방향을 바꿨을 것이라고 말한다.

"금속활자 주조술은 서양문화가 전래되면서 근대 이후 금속활자 인쇄술이 사라져서 약 100여년간 단절되었다가 오국진 선생이 평생을 바쳐 잊혀졌던 전통기법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쇳물을 녹여 활자를 만들때 생긴 기포가 글자에 나타나는 특징을 통해 직지가 금속활자인쇄본임을 증명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밀랍주조법으로는 틀 하나로 활자 한개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논쟁의 종지부를 찍으며, 직지가 구텐베르크보다 앞서 제작된 금속활자본임을 세계에서 인정받게 됐습니다"

전통기법을 사용해 금속활자를 복원한 오국진씨의 업적은 직지뿐만 아니라 금속활자술을 세계에 알리며 문화 강국으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금속활자 제작과정은 글자본만들기, 원형만들기, 주조작업, 마무리작업 등 크게 4과정으로 구분하고 있다. 만드는 기법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누는데 밀랍으로 만드는 밀랍주조기법은 초기에 주로 쓰인 방식이고, 활자의 원형으로 주물틀을 만든 후 찍는 모래주조기법은 조선시대 이후 보편화된 방법이다.

임인호씨는 "주물로 만드는 방법은 고도로 발달한 방법이긴 하지만 천연재료를 사용해 만든 밀랍 주조법은 만들면서도 감탄사가 나올 만큼 대단한 기술이다"며 "글자본을 붙인 밀랍을 주형틀에 넣고 쇳물을 붓고난 후 활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순간은 지금도 무척 떨린다"고 한다.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난 뒤 자신의 영역 밖에서 밀랍과 쇳물이 만들어내는 활자를 기다리는 동안과 그 활자가 나올때의 쾌감이야말로 금속활자를 아직도 만들게 만드는 매력이란다.

▲ 활자가 완성된 모습과 책자로 찍혀진 모습

하지만 자신을 잡아끄는 매력만큼이나 고뇌 역시 크단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공정을 10년을 넘게 하고 있지만, 지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는 임씨는 "만들어진 것을 보는 예술품과는 달리 활자 작업은 책으로 찍어낸 인쇄본이 결과물로 평가받으며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묻히게 된다"며 "그만큼 금속활자를 배우는데도 힘들지만, 한 페이지 분량의 책자를 찍기까지 활자를 만드는데 3개월가량 걸리는 활자 작업은 자신과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힘든 과정을 지나면서도 없던 것을 창조해온 당시 장인들을 생각하면 과거를 재현하는 사람으로서 마음가짐도 달라진단다.

이제는 전통을 잇는다는 사명감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는 그는 스승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금속활자를 통해 우리 문화를 세계에 우뚝서게 만드는 선봉장이 되는 게 꿈이다. 한 자 한 자 글자를 새기고, 편리를 창조하고자 한 장인정신이 진실됐기 때문에 금속활자의 탄생이 가능했다는 그의 말을 화두로 새겨놓는다.

"독일에서 하루에 15차례 이상을 금속활자 주조 시연을 하면서 유럽인들이 문화를 접하는 자세에서 큰 감명을 받았어요. 이에 비하면 우리는 우리 문화를 다시 정립시켜 나가는 자세로 더 사랑하고, 더 잘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사랑하지 않을 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직지가, 금속활자가 우수하다고 해도 진심으로 봐야지 활자가 눈에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 찾아오는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