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마을
김 병 기 <시인>저녁 이내 피는 연못에 나와
연꽃의 허리에 배를 묶는다
연밥이 익는지 한소끔 끓어오르는데
낡은 시간의 연서가 둥둥 떠다니고
조급증이라도 집어넣은 듯 못물이 잠시 떤다
몇 번이나 이 서늘한 곳으로 와서
가시로 손톱 아래 생살을 찢어
손끝에 붉은 꽃불을 부끄럼처럼 켜고
그대의 눈빛과 내 눈빛에 다리를 놓았던가
탑에 핀 꽃이야 바람이 알겠지만
가슴에 심지를 내밀어 불을 붙이고
가으내 잎처럼 붉던 헤어짐을 뉘 알겠나
수면을 치고 올라와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툭툭 낯선 안부를 묻는 이 몇 있었으나
턱을 괴운 굽은 손가락에 스며드는
그 느리고 낮은 숨의 온 곳을 알 수 없어
검은 연꽃을 꺾어 빈 배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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