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삶
깨어 있는 삶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1.12.0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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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코로나19 상황이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끔 만나 회포를 풀던 고등학교 동창들과 적조해지면서 특히 저녁 시간에 만나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자리 모임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삶의 행태가 이렇게 변모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주말 집 근처 명암저수기 둘레길을 산책하다가 저수지를 유영하고 있는 오리 떼를 보자 몇몇 그리운 동창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순간 `카톡' 하는 소리가 들렸고 확인해 보니 몇몇 고교 동창들이 만나 함께 점심을 먹는 번개 모임에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기쁜 마음에 약속 장소로 한달음에 달려가 고교 동창들을 만나 점심을 먹은 뒤 별 다방에서 들려서 커피도 마시고 친구들 소식도 주고받으며 회포를 풀었다.

모임이 끝나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한 친구가 자기 차로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해서 친구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도중 파란 보행자 신호등이 꺼졌음에도 왕복 6차선 도로의 횡단보도 중간 지점을 힘겹게 걷고 있는 등이 휜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다행스럽게도 운전하는 친구는 고등학교 때도 모범생이었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심성이 착한 종교인으로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할머니에게 그 어떤 불만도 표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측은한 마음을 일으켰다. 운전자가 보행자 신호가 꺼진 상황에서 교통을 방해하며 힘겹게 걷고 있는 할머니를 이해하고 오히려 따듯한 마음으로 배려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물론 할머니도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과욕을 부리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려서 안전하게 건널 줄 아는 여유로운 삶을 즐길 줄 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도 일어났다.

나이가 들고 육신이 노쇠해져서 민첩성이 떨어지고 걸음걸이가 둔해지는 것은 죄도 잘못도 아니다. 동시에 육신의 쇠락이 교통의 흐름을 방해해도 되는 특권도 벼슬도 아니다. 따라서 노약자들은 횡단보도에 도착했을 때 이미 파란 보행자 신호가 켜진 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라면 특히 파란 신호가 켜져 있는 동안 여유롭게 건널목을 건널 자신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음의 파란 신호를 기다렸다가 파란 신호가 켜지는 순간 신속하게 건널목을 건넘으로써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노약자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의 노쇠함에 따른 민첩성 부족이 특권이라도 되는 양, 막무가내로 교통 신호를 위반하는 행동은 철저하게 경계하고 자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물론 운전자들도 노약자가 성급한 마음으로 민첩성이 떨어진 노구를 이끌고 본의 아니게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목격해도 크게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포용해 줄 수 있는 여유롭고 따듯한 삶을 지향한다면 그 또한 아름답고 멋진 일이 아닐까?

우리 모두 타인의 부족한 점들은 따듯한 마음으로 넉넉하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한편 자신의 부족함이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는 일은 냉철한 마음으로 원천 차단해야 한다. 모두가 온전히 깨어 있는 마음으로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조차 맑고 밝은 지혜로운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나갈 때 나가고 물러설 때 물러서는 `음양화평(陰陽和平) 중정무구(中正無垢)'의 아름다운 세상 즉, 다 함께 행복한 지상낙원이 활짝 꽃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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