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방콕, 따뜻한 중심
집콕방콕, 따뜻한 중심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1.01.19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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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해가 나왔는데 여전히 춥다.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어깨와 닿아 있다. 바람도 제법 분다. 한 방향을 고수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산만한 바람이다. 현관 처마 밑에 달린 풍경이 요란스럽다. 바짝 마른 물고기가 풍경에 매달려 위아래로 뒤집히기를 반복한다.

주말이 유일하게 마당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인데, 날이 도와주지 않는다. 연신 밖을 보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정오로 가까워지면서 시끄럽게 소리를 내던 까치와 직박구리도 외출하지 않았다. 보온재로 덮어둔 낙엽은 바람에 날려 온 집안을 탐방하고도 갈팡질팡 자리를 잡지 못한다. 몇몇 낙엽만이 바람이 불지 않는 구석에 모여 햇볕을 쬐고, 그 위로 고양이가 웅크리고 엷은 졸음을 청한다. 바람을 막고 햇살이 닿는 곳은 따뜻하다. 거실창을 열고 밖의 공기를 들인다. 삽시간에 삭풍이 커다란 창 아래로 들어 집 안의 공기를 바꾼다. 나무 끝에 걸려 있던 바람이 집안의 잎이 커다란 식물과 조우한다. 정지해 있던 먼지는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공중으로 떠서 준비도 없이 외출하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는 광경이다. 발목은 시리지만 상쾌하다. 그렇게 시간은 정오가 되고, 따스한 햇살이 집 안 깊숙이 들어와 환희의 공간이 되었다. 햇살을 간절하게 기다리던 것들의 세상이 되었다. 창가 쪽의 선인장, 마오리 코로키아, 풀루메리아, 셀럼, 윌마가 햇살에 덮여 훌훌 거리고, 좀 더 깊숙한 곳의 것들은 햇살을 향해 일제히 줄기와 잎을 향한다. 그리고 이 공간에 더불어 사는 사람들도 합류한다.

아내는 햇살이 드리우는 거실 창 쪽의 라운지체어를 점령했다. 얼마 전부터 뜨개실을 코바늘에 걸고, 뜨고 풀기를 반복하더니, 이제는 안정감 있게 얼개를 만들어 나간다. 월넛색의 뜨개실은 옆에 있는 소반 위의 커피색과 깔맞춤이다. 나도 그 옆에 자리한다. 올해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 그동안 모아 놓았던 버려지는 자투리들에게 역할을 주는 것이다. 손바닥만 한 느티나무 판으로 커피 탬퍼 받침대를 만들고, 삭정이로 커피원두 스푼을 만들었다. 오늘은 분쇄된 커피가루 스푼이다. 먼저 무뎌진 조각도의 날을 세우고 조각을 시작했다. 이제 손이 익숙해졌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포질이다. 금세 스푼 하나가 완성되었다.

재료는 부러진 캔버스 틀이다. 충분히 건조가 된 삼나무의 은은한 향이다. 오래 사용하다 보면 커피가루의 기름에 길들여지겠지? 무슨 향이 될까 기대된다. 이참에 핸드밀에 원두를 넣고 손잡이를 돌린다. 잘 볶아진 커피가 갈리는 소리는 햇살과 잘 어울리는 음률이 된다. 커피의 원두향 마저 데워진 공기에 결을 같이하며 공간을 흐른다. 조각하며 널브러진 칼밥도 멋져 보인다.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에 가족이 모인다. 모인 공간에는 각각의 영역이 있다.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자기만의 손맛을 가족과 나누고 싶은 나는 늘 무언가를 만든다. 아이들이 세 명이라 숫자도 세 개다. 말차시도 세 개, 숟가락도 세 개다. 아내는 재봉틀을 돌리고 손뜨개질을 한다. 아이들에게 줄 소품이다. 둘째는 늘 그랬듯 피아노를 들려준다. 감사의 답이다. 막내는 만든 소품을 평가한다. 기능과 형태를 음미하면서 이야기한다. 마지막은 가격인데, 늘 평가절하다. 각자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커다란 원목 테이블을 중심으로 몇 발자국 정도 범위다.

시간을 두고 공간은 한 땀 한 땀 더하고, 켜켜이 쌓인다. 정해지고 짜인 틀은 없다. 움직이는 대로 공간은 변한다. 매일 더해지는 시간에 따라 디자인한다. 온전히 손맛을 전해 줄 것을 만들어 연출하고 공유한다. 음식도 생활 소품도, 그래서 그 안은 좀 더 아날로그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햇살이 들어 따뜻하고 움직임이 있어 따뜻한 공간, 세대가 달라 집콕이고 방콕이지만 공간은 우리 가족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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