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의 꿈
달항아리의 꿈
  • 최운숙 수필가
  • 승인 2019.09.1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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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운숙 수필가
최운숙 수필가

 

아침을 주듯 천원을 넣는다. 천원의 기도가 훨훨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면서 나의 아침은 시작된다.

달항아리와의 인연은 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내력이 좀 복잡하다. 아는 동생이 학원을 시작하면서 친정어머니께 받은 항아리다. 친정어머니 친구분이 어느 고마운 분께 선물하고자 기능보유 사기장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보내지 못하게 되었고, 그 선물은 친정어머니 손에 들어갔다. 친정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집 안에 꺼내놓지 못하고 꼭꼭 싸서 다락 속에 두었다는 것이다. 마침, 딸이 학원을 개원했고 항아리는 딸에게로 보내졌다. 도자기에 관심이 없는 동생은 다시 나에게로 보내온 것이다.

차[茶] 공부를 하면서 도자기에 관심이 생긴 나는 금방 항아리에 매료되고 말았다. 도예가의 정성과 염원, 그리고 힘찬 기가 느껴졌다. 달항아리에는 반야심경과 달마대사가 그려져 있었다. 사기장은 부탁한 분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서 도자기에 붓을 움직였을 것이다. 붓끝의 옹골찬 기백이 그대로 느껴졌다. 선명하게 찍힌 장인의 낙관이 사기를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어디에 둘까 고민이 되었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다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았다. 책꽂이 위에 올려도 보고, 차 도구 옆 환한 곳에 놓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자리를 잡은 곳은 책상 옆이다. 컴퓨터를 하다 말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달마대사가 보인다. 내 머리보다 큰 도자기를 훔치듯 본다. 그런데 신기하다. 처음에는 무섭게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가까운 친구처럼 편하다. 눈도 마주치고 말도 걸어보며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천원을 넣어주며 자연스러운 이야기도 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오래 보면 정이 드나 보다. 아름다운 도자기라 여러 사람이 보길 원했으나 결국 나 혼자 행운을 차지하게 되어버렸다.

이제, 몇 달이 지나면 올해가 기울 것이다. 새로운 해가 오면 달항아리의 꿈에 날개를 달아줄 생각이다. 항아리 속에는 천원이 빼곡하다. 한꺼번에 쏟아놓으면 농사의 풍년처럼 뿌듯하다. 작년에는 항아리를 털어 가래떡으로 이웃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을 주었다. 올해는 어떤 빛깔로 보낼지? 잠시 생각해본다.

만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달항아리는 어쩌면 나와의 인연이? 정해져 있었는지 모른다. 내게 온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인연이 시들지 않도록 매일매일 닦아야겠다. 불교의 경전처럼 항아리는 `공'인 상태다. 달마대사는 색을 놓아야 공을 만난다고 했다. 색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가릴 수는 없지만, 항아리 속 천 원짜리 지폐들이 누군가에게 좋은 쓰임이 되도록 고민해야겠다. 의뢰한 분의 기도와 장인의 염원이 항아리의 꿈으로 훨훨 날 수 있도록 말이다.

현실에서 비현실로 바뀌는 순간, 시인에게 시가 보인다. 항아리의 꿈이 공이 되는 순간,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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