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시간
4월의 시간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4.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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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4월, 모든 생명들에게 있어 이보다 더 바쁜 달이 있을까. 온 대지에서는 푸른 생명이 싹을 틔우기 시작하여 꽃을 피워내느라 부산스럽다. 어디를 가나 꽃이 지천이라 꽃 멀미가 날 정도다. 요즘은 꽃이 피는 차례도 없이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피워낸다. 이곳은 꽃들의 발걸음이 조금 느리다. 벚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분명 이곳이 서울보다 남쪽임에도 서울에서 벚꽃이 만개하고 나서야 벚꽃은 입을 겨우 옴짝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우리 집 작은 화단에도 꽃들은 서로 자리를 다투느라 정신이 없다. 진달래, 목련, 개나리가 지고 나니 이제는 진한 향수를 뿌린 흰색과 보라색 라일락이 성큼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명자나무도 그 옆에서 당당히 붉은 꽃의 코사지를 여기저기 달고 앉아있다. 어사화라고도 부르는 능수홍도화와 백매화는 대문 앞에서 가는허리를 구부리고 지나는 길손을 잡느라 여념이 없다. 목단과 작약은 꽃봉오리를 단단히 만들며 준비 중이다. 나무들 틈새에서도 작은 꽃들도 예외는 아니다. 제일 먼저 꽃 잔치를 시작한 것은 이른 봄, 추위를 무릅쓰고 피어난 노란 복수초였다. 이어서 연보라색의 산제비꽃, 수선화, 밝은 분홍의 꽃잔디가 피었고 지금은 튤립과 보라색 무스카리 꽃들이 한창이다. 화단 여기저기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매발톱과 백합들도 꽃봉오리를 만들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이르다.

4월은 푸른 생명뿐 아니라 우리 사람들도 바쁜 달이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적응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새내기들의 모습이 보인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상하게 1학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가방은 이제 막 부등깃을 면한 아기 새의 날개인 듯 부자연스럽고,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 또한 1학년의 모습은 앳되기만 하다. 아직은 교복이 몸에 잘 맞지 않아 엉성해 보이지만 그래도 얼굴에서는 그늘이 보이지 않아 좋다.

이렇게 4월은 많은 나무와 사람들에게 있어 새로움의 시작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4월이 마냥 즐겁고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많이 피워냈던 꽃들이 얼마지 않아 모두 져 버리기 때문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달, 그래서 4월은 왠지 더 공허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4월은 5년 전, `세월호의 아이들'이 스러져 간 달이다. 이제 한참 피어나던 그 많은 꽃이 일순간 꺾였던 시간들, 우리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시간이다. 그것이 우리 어른들이 `세월호 아이들'에게 사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4월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일 년이 지나면 다시 찾아올 달이지만 그때는 이미 지금의 시간이 아니다. 꽃이 지면 뿌리는 굵어져 강하고 깊게 땅속을 파고들어 가 몸을 더 튼튼하게 만들 듯, 당연히 내년의 나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물론 모든 생명체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점점 약해지는 것도 기정사실이지만, 그 또한 깊은 내면을 살찌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참 고맙고 소중한 달이 아닐 수 없다. 다행이다. 수많은 애채들이 살을 찌우고, 키를 늘리며 튼튼한 시간을 만들어 갈 4월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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