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사라지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사라지고 있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11.29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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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연지민 취재3팀장(부장)

지난 주말 지인들과 커피숍에 들렀다. 11월 끝자락과 12월을 앞두고 있어선지 실내 곳곳에는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다양한 물품으로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커다란 눈사람 모양의 산타는 애어른 할 것 없이 즐거운 포토존이 되었다.

사진을 찍고 찍히며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로 옮겨간 이야기는 캐럴 송으로 화제가 모였다. 이맘때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만 했던 캐럴 송이 언제부터인가 듣기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즈음에는 유명 연예인의 익살이 담긴 캐럴 송 음반이 반짝 출시되었고, 거리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노래로 가득했다. 어린아이들이 사탕과 빵에 이끌려 교회나 성당의 문턱이 낮아지는 것도 이때였다. 40~50대 세대들에겐 가난했지만 사금파리 같은 소중한 추억 한 가닥이 아닐 수 없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분주한 발걸음 속에서도 가족과 이웃을 위해 작은 선물을 주고받던 기억도 선명하다. 두레라는 전통문화처럼 공동체로의 삶을 인지하고 물질적, 정신적 나눔을 실천하게 했던 서구문화의 기억은 종파와 관계없이 생활 속 문화로 그렇게 자리 잡았다. 불교적 색채와 유교적 색채가 강했던 우리나라가 근대화로 서구문화를 받아들였지만, 크리스마스는 차분히 한해를 정리하며 즐겁게 하루를 보내자는 문화적 의미도 컸던 셈이었다.

그랬던 크리스마스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공휴일 지정을 두고 종교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빚어지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종교적 행사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종교의 문제도 공평성에서 어긋난다는 방식으로 이해하다 보니 문화적 접근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같은 종교가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배타적 행위는 종교적 문화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가능했던 종교적 화합이 경제적 풍요 속에선 갈등으로 표출되면서 종교적 배려에서가 아니라 이견이 바람직한 문화마저 지워내는 것이다.

지금이야 양말을 걸어두고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줄어들긴 했지만 연말의 따스했던 크리스마스 풍경은 이제 드라마 ‘응답하라’에서나 확인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유럽의 긴장감은 심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와의 종교적 갈등이 테러 우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4일 벌어진 IS의 파리 테러 이후 미국과 유럽에선 종교색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축소하고 있다고 한다. 11월 중순부터 유럽의 도시마다 개장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트리 점등식도 지양하고 차분하게 연말을 보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는 종교색을 드러내는 크리스마스 인사말이나 장식물 설치마저 자제하고 있고, 영국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종교적 광고에 대해 자제요청을 하고 있다고 한다. 종교전쟁의 소지를 예방하려는 조치이지만 종교갈등이 전 세계를 얼마나 압박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일각에선 문화적 다양성과 종교적 배려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배려의 차원이 지나칠 경우 심리적 위축만 조장할 수 있다는 논지다. 여기에 문화적 다양성으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갈등의 골이 반목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종교 갈등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구촌은 단순히 크리스마스 문제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서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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