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광고 ‘노이로제’
대출 광고 ‘노이로제’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5.10.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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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

18개 중 10개. 이쯤 되면 공해다. 케이블TV와 IPTV의 광고 무대를 싹쓸이하고 있는 ‘대출 권유’ 광고 얘기다.

지난 주말 한 케이블TV 채널에서 본 방송 시간 전에 방영된 광고를 일일이 점검해봤다. 한 프로그램에서는 18개 중 10개, 또 다른 프로그램의 경우 16개 중 9개. 무려 전체 광고 편성 건수 중 60%가 대부업체나 저축은행 관련 광고였다.

시청률이 가장 높은 본 방송 상영 시작 직전이나 직후에 나가는 광고도 역시 대출 관련 광고였다. 편성 비율이 60%이다 보니 시청자들은 1개 걸러 1개꼴로 대출 광고에 노출된 셈이었다.

이 정도면 어찌 지겹지 않겠는가. 정부는 대출 광고의 폐해에 대한 원성이 높자 올해 관련법을 개정해 지난달부터 청소년들에게 노출되는 시간대인 평일 오전 7~9시, 주말 오전 7시~밤 10시 사이에는 대출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정부 금융 당국과 국회가 모두 대출 광고의 폐해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조치였다.

그러나 효과는 별무신통이다. 대부업체들은 그 시간대에 ‘대출 안내 광고’를 중단하는 대신, 업체 이미지 광고를 다시 내보내고 있다. ‘안내 광고’와 ‘이미지 광고’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인터넷 포털에서 대부업체 이름만 검색하면 대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세상. 이래저래 원치않는 광고 공세에 시달리는 시청자들만 ‘짜증’이다.

비지상파 채널에서 대부업체 광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5~6년 전쯤이다. 국내 사채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하던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공격적으로 TV광고를 시작했다. 대부분 영세했던 국내 대부업체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마케팅 전략이었다.

금융위원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국내 9개 대형 대부업체들의 방송 광고 집행 액수는 347억원이었다. 그러나 1년 만에 2배가 뛰어넘는 704억원으로 급증했고, 이듬해인 2014년엔 924억원으로 늘었다. 올해엔 ‘당연히’ 1000억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천문학적 마케팅비 지출에는 ‘TV광고=매출신장’이라는 공식이 성립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계의 한 사채업체는 2013년에 당기 순이익의 263%에 달하는 81억원을 광고비로 지출했다. 그런데 이듬해 당기 순이익은 110억6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3.6배나 급증했다. 대부업체들이 TV광고에 ‘올인’하는 이유다.

대출 광고의 효과가 좋은 이유는 소비자들이 쉽게 현혹되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 쓰는 게 미덕인 것처럼 포장되는 광고 영상은 실제 급전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마저 ‘유혹’해 빚을 지게하고 만다.

대출 광고를 무작정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당연히 ‘미덕’이다. 투자와 소비를 촉진해 돈이 돌아가는 주변의 경기를 살아나게 한다.

문제는 지금 제작돼 전파되고 있는 광고 내용이 ‘빚은 당연히 져도 되는 것’이라고 시청자들을 세뇌(洗腦)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에서 대출의 폐해에 대한 고지 의무를 명시했지만 실제 광고 영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대출 폐해) 안내 문구를 인지하는 시청자들은 거의 없다. 대출 광고의 순기능을 살리면서 TV 시청자들이 ‘캡티브 오디언스(Captive Audience

)’가 되지않도록 하는 묘안이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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