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을 용기
내려놓을 용기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5.10.12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이영숙 <시인>

“저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가 부러워요.”

독립운동하다 옥에 갇힌 아들에게 비굴하게 항소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의롭게 죽으라는 편지와 수의(壽衣)를 지어 보낸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를 말한다.

유약한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었는지 아들은 스스로 강해지고자 대학 2학년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자아 극기 훈련에 돌입했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파트 공사현장으로 날일을 다녔다. 건설현장 소장이 일이 끝나는 날, 아들의 그 지독한 끈기에 감동했는지 웃돈 10%를 얹어주며 ‘너는 꼭 성공할 거다’라는 말과 함께 밥을 사준 일이 있다.

아들은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2학기 등록금을 내놓고 부모와 상의도 하지 않고 해병대를 지원했다. 그것도 입대 며칠 전에 통보하니 아마도 엄마의 성정을 짐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군 제대까지 면회 한 번 못 오게 해서 아쉬움이 크지만 강해지기 위해 허물벗기 하는 아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올 3월 공과대 대학원 졸업 후 전기 관련 기업체의 연구원으로 입사한 아들. 새벽에 일어나 달무리 퍼지는 중천에 들어오니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도 군 복무 때나 지금이나 늘 내색 한 번 하지 않는다. 휴일에도 노트북을 짊어지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회한에 잠긴다.

아버지처럼 퇴근 시간이 정확한 공무원이 되어 평범한 삶을 누리길 바랐지만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대학원 2년 동안 배운 이론을 현장에서 1주일 만에 통달했을 때의 그 소름돋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노라는 아들 앞에서 쥐구멍을 찾는다.

부모의 사랑을 음차로 할 때 어머니의 사랑은 모(母)아지는 사랑이고 아버지의 사랑이 부(父)하고 흩어지는 사랑이라면 남편은 논리적인 거리로 늘 속사랑을 유지하고 나는 감성적인 거리로 무조건 품는 겉사랑이다.

부모의 영역을 탈 영토하여 지경을 넓혀간 아들. 부모라는 이름과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옥죈 폐쇄적인 환경에도 본래적 야성을 잃지 않고 잘 성장한 아들이 감사하다.

며칠 전부터 신화학자이며 꿈 분석가인 고혜경 박사의 강의에 한참 흥미를 붙인 터라 늦게나마 아들에 대한 어미의 잘못된 사랑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미성숙한 사랑이 자녀가 지닌 본래적 가치와 건강한 야성을 파괴한다.

호랑이가 나타나면 위험하니 꼼짝 말고 집안에만 있으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 도끼를 이용하고, 동아줄을 이용해 하늘로 지경을 넓히기까지의 지혜는 어머니 부재에서 생성된 확산적인 사고일 것이다.

좋은 문장보다 경험이 더 우선한다. 실패도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큰 재산이다. 고통 속에서 생각이 많아지고 그 많은 생각을 통해 지혜와 창의적인 사고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자녀의 야성을 존중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지경을 넓혀갈 수 있도록 사랑 방정식을 수정하지 않으면 세대 간 불협화음은 계속될 것이다. 어정쩡한 부모가 자식을 병들게 한다. 똑똑한 부모보다는 온전한 부모, 지혜로운 부모가 자녀를 창조 융합적인 존재로 성장하게 한다.

인생의 마라톤에서 반환점을 도는 시기에 내려놓아야 할 첫 번째 용기, 바로 자식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