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강아지의 가십
솔로 강아지의 가십
  • 전영순 <문학평론가·수필가>
  • 승인 2015.05.17 20: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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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스크래치
전영순 <문학평론가·수필가>

잠시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던 동시집 『솔로 강아지』의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씁쓸한 가십(gossip)만 남겨놓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췄다. 이 책이 잔혹동시로 논란이 되자 출판사에서 발 빠르게 폐기처분하는 바람에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우리는 의견이 분분한 이 작품을 놓고 생각해 볼 문제다.

한 사이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작가 엄마의 말 “동시 ‘학원가기 싫은 날’은 아이들을 숨쉴틈 없이 학원으로 내모는 한국의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우화”라며 “작품성과 시적 예술성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삽화도 아주 잔인하게 그려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죽어있고 아이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엄마의 심장을 먹고 있다. 잔혹동시를 쓴 아이의 어머니가 시인이라고 실명까지 밝히고 있다.

시가 아무리 픽션이라고 하지만 순화되지 않은 직설적 화법으로 쓰인 동시를 본 기성세대들은 대부분 경악한다. 일선에서는 그림 형제의 언캐니한 동화 + 카프카스럽다며 차후 노벨문학상이 기대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미디어에 놀랐고, 10살배기 아이에 놀랐고, 아이 엄마의 태도에 놀랐고, 출판사에 놀랐고, 독자에 놀랐다. 더 깊게 들어가면 사회 전반적인 문제가 드러나기 때문에 거시적인 것만 봐야 할 것 같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격세지감이란 말도 이젠 무색할 정도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수시로 넘나들며 살 수 있도록 가상의 공간, 꿈같은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과학기술로 미디어의 전파는 바이러스를 능가할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 솔로 강아지도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었다 사라졌다. 이젠 어린이가 기성세대들을 염려하거나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다. 10살배기 아이가 어른들을 경악시킬 정도니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여기에 붙여도 되나 싶다.

10살, 천진스런 꿈을 마음껏 펼칠 나이다. 10살 된 순영이는 학원 가기 싫어서 잔인하게 해부한 어머니를 먹으면서 향유하고 있다. 야만인들이나 행하는 의식을 태연하게 재현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쓴 동시치고는 믿어지지 않은 판타지의 세계다. 과연 어린아이 혼자서 이렇게까지 쓸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의구심이 간다.

일반인들은 아이의 엄마가 이 시를 보고 얼마나 당혹스러워할까하고 우려하지만 그것은 기우다.

아이의 엄마는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삽화까지 더 잔인하게 그려달라고 주문했단다. 아이의 엄마 또한 시인이라는 말에 석연치 않은 의문을 던진다.

작품성도, 예술성도 좋지만 무릇 언어를 매개로 한 예술, 문학은 인간의 의한, 인간을 위한 문학이 되어야 한다.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인간애가 없다면 잡동사니에 불과하다.

문학도 그렇다. 문학은 과학보다 고귀하고 신에 가까운 인간 너머의 정신세계다.

한마디로 문학의 힘은 인간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길라잡이다. 인간애가 배제된 문학적 태도는 언어 실험용이다. 출판사와 작가 측은 혹시나 상업성과 스타정신에 몰두하지는 않았나 하고 조심스레 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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촨쓰 2015-05-20 11:59:59
참내, 인간 애적인 부분이 개인화 된 것인가? 사회화 된것인가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중요할듯한데요

사회적인 이데올러기속의 문학이냐? 개인화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예술이냐라는 부분도 중요합니다.

바른 소리 좋은 말로 사회를 위한 글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