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불편한 진실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5.03.16 18: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화장실 문 앞에서 서성인다. 주어진 점심시간은 1시간인데 30분이 흘렀다. 불러도 대답만 하고 나올 생각을 안 하신다. 다른 사람들은 입구에 한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나만 민망한 얼굴로 문 앞에 바짝 다가서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팔순을 훌쩍 넘긴 친정엄마를 모시고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상심이 크신지라 다녀오시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더 컸다. 무엇보다 거동이 많이 불편해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동안 2년에 한 번씩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하면서 지난해는 두 분께 일본여행을 보내드리려 계획을 했었으나 아버지께서 황망하게 떠나셔서 자식들이 몹시 후회를 하던 중이었다. 엄마는 상기된 표정으로 금방 떠나야 하는 것처럼 서두르셨다.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아 있으니 천천히 여행준비를 하자는 내 말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하셨다.

출발하는 날, 새벽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고부터 나는 휠체어를 받아 엄마를 태우고 출국절차를 밟았다. 아침식사를 하지 못한 엄마는 많이 시장했는지 비행기 안에서 주는 빵과 음료를 달게 드신다.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일본에 도착해서도 항공사직원이 휠체어를 대기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입국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해준다. 불편한 엄마 때문에 오히려 편하게 출국과 입국을 하게 되었다. 현지에서도 여행사에 부탁해서 휠체어를 차에 실었으니 문제가 없을 듯싶었다. 하지만 버스로 이동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비행기 안에서 드신 간식으로 인해 탈이 나신 것이다. 이렇게 큰일을 저지를 줄은 예상치 못했다. 몹시 당황한 건 엄마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미리 얘기를 하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버스가 달리는데 어떻게 말을 하느냐고 하신다.

30여 분 만에 열린 화장실 안에서 엄마는 얼이 반쯤은 빠져 있었다. 변기의 물 내림 손잡이가 우리나라와 반대위치에 있는 걸 알지 못하니 물도 내리지 못하고 속옷은 벗어 바닥에 그냥 두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미안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누가 볼세라 냄새 나는 속옷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방에 넣고 아무렇지도 않게 오물이 묻은 손을 세면대에서 닦아 드렸다. 그리고 속옷을 새로 갈아입혀 드렸다.

여행하는 동안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다니거나 거리가 멀면 휠체어를 밀고 다녔다. 어느 곳에선 춥고 재미없다고 그냥 가자고 하면 휠체어를 밀고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수시로 화장실 가고 싶지 않으냐고 묻기를 반복한다. 엄마에게서 잠시도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일행들이 힘들어서 어떡하느냐고 해도 나는 힘든 줄 몰랐다. 이토록 변해버린 엄마의 모습이 내 탓만 같아 울컥거리는 슬픔을 도로 삼키곤 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정점에 다달아 무너져 내리는 육체와 정신은 결코 원하는 일이 아니다. 모든 걸 다 주어도 비켜갈 수 없는 예정된 길을 가고 있는 엄마, 내게도 그 문턱이 결코 멀지만 않다는 걸 안다. 그래서 엄마가 더욱 안쓰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