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본질은 위기 때 나타난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본질은 위기 때 나타난다고 합니다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03.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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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양심적 지식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의 이중성이다. 추구하는 가치의 충돌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다고 느낄 때 그들은 크게 좌절한다. 

예를 들어 7·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당시의 살벌한 분위기에서 학생이나 보통 사람들조차 몸을 던져 투쟁하는데도 거기에 선뜻 동참해 행동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굴욕감은 너무도 컸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재야에 묻히거나 절필을 선언한 지식인도 더러 있다.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이 이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주 혼돈스럽다가도 언뜻언뜻 엄습하는 고통스러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我)라는 존재감의 이중성을 넘어 아예 인식의 괴리(乖離)를 최근처럼 경험한 적도 없다.

천만다행이게도 리퍼트 대사는 현재 기대 이상으로 회복중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지구상의 불행, 전쟁이나 각종 분쟁의 원인이 이번과 같은 돌발적인 사건으로 인한 경우가 많았기에도 그렇다. 만약 당시의 사고가 대사의 생명이나 신체에 치명상을 입혔다면 상황은 예측불허일 수 있다. 

사고 후 그가 보여준 언행도 의연했다. 외교관 답게 감정표현은 정제됐고 언사 또한 일관됨으로써 위험에 처했던 환자답지 않게 인간적 풍모마저 한껏 드러낸 것이다. 정작 문제는 그를 대하는 대한민국, 우리한테 있었다.

대통령의 제부라는 사람은 광화문 광장에서 미국을 향해 석고대죄를 자청했다. 과거 왕조시대에 거적을 깔고 엎드려 임금의 처벌이나 명령을 기다린다는 뜻의 이것은 냉정하게 말하면 “사약을 내려 주십시요”라고 간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외국언론은 현재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한 친지가 아닌 ‘대통령 친동생의 남편’으로 그를 표현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일단의 여성들은 미 대사관 앞에서 부채춤을 추며 큰절까지 올렸다. 우리의 아름다운 한복과 여성의 잔상이 이때처럼 처량하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한 시민은 병세회복에 특효라며 리퍼트 대사에게 개고기를 선물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제의했다. 그런데 대사는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애견가라고 한다. 

사건이 나자마자 검·경은 무려 100명의 특별수사팀 구성을 발표했다. 연 인원도 아니고 일거에 100명의 수사팀을 꾸리는 건 초유의 일이다. 이에 고무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FBI 요원들이 경찰청에 상주하며 수시로 수사상황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주권 국가가 외국의 수사요원을 경찰 지휘부에 상주시킨 것 또한 전례가 없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의 머리엔 미국과 같은 강대국은 고사하고 우리보다도 한참이나 못한 필리핀 등 동남아국에서조차 억울하게 피살되고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현실이 오버랩됐다. 상대국의 수사보고가 아니라 협조만 제대로 됐어도 그 가족들의 원한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김기종의 만행에 대해 이 나라 주도세력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종북’으로 덧칠하려 하자 오히려 미국 언론이 이를 경계했다. 뉴욕타임스가 주한 미국대사관에 근무한 전직 직원의 입을 빌려 “정신나간 사람의 폭력적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꼴”이라며 “미국 정부는 한국이 보안법을 매카시즘의 도구로 사용해 온 것을 수십년 동안 비판해 왔다”는 기사를 실었다. 때를 맞춰 미 국무부는 북한과의 연계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범행동기를 추측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했다. 한데 며칠간 벌어진 일들은 이를 한참이나 벗어났다. 가슴이 아팠다는 진중권은 “초현실주의적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아무리 사과라고 하지만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라면 서로 지켜야할 기본과 원칙이 있다. 하찮은 범부들의 사이에서도 사과는 당당해야 설득력 있고 인정받는다.

그들이 미 대사관 앞에서 큰절을 올리던 그 시각, 세월호 유가족들은 미국을 순회하며 역시 미국인들을 상대로 진상규명을 호소하느라 거리를 헤맸다. 국내에서 무릎꿇고 외국에 가서 하소연하는 지금의 현실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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