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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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03.12 18:2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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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앙상블의 유혹에 빠지다’라는 제목이 날 유혹했다. 3월이지만 아직은 밤 바람이 차다.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나섰다.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한 도시는 하나 둘 켜지는 차들의 불빛으로 막 치장을 하고 있었다. 

불빛 속을 헤치며 음악을 들으러 갔다. 당연히 예술의 전당이라고 생각했다. 내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그곳으로 핸들을 돌리게 했다. 도착해 보니 예술의 전당은 불이 꺼져 있었다. 초대장을 펴 보았다. 청주아트홀이다. 차를 돌렸다. 간들간들하게 입장을 했다. 

목관 5중주와 금관 5중주 현악합주까지 그야말로 귀가 호사를 누렸다. 가끔은 졸기도 하고 가끔은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하고 또 가끔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면서 나만의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냈다. 일상의 먼지를 확 털어버리는 멋진 실내악 페스티벌이었다. 

음악회가 끝났다. 짱짱하던 선율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느낌을 조금 더 붙잡아 두고 싶었다. 명암저수지로 갔다. 까만 물 위에 고운 선율의 여운을 띄워놓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행복한 여운을 음미하다 물가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날씨임에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나와 걸었다. 알싸한 바람이 살갗을 두드렸다. 잔잔히 내려앉은 별빛을 올려다보며 선상 카페에서 불어오는 노랫소리를 귀에 담았다. 그때 “운동 나왔어?”하고 트레이닝을 입은 그녀가 반갑게 말을 건넨다. “네 언니~ 차 한 잔 할까요?” 그녀는 웃음을 가득 머금고 대답한다. “좋지~!”

일년을 그녀와 이유 있는 수다를 떨었다. 한달에 한권씩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독서모임 ‘수다 팀’의 친구다. 그녀들과의 폭풍 수다는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해주었다. 내게 글은 그동안 미완의 과제였다. 쓴다는 것에 대한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한 발자국도 글 속으로 다가가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그녀들과의 수다는 아득하게 가물거리던 글에 대한 갈증을 조금씩 해소시켜 주었다. 수다를 떨고 온 날에는 행복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일년간의 수다 덕분에 자칫하면 현실에 안주할뻔했던 내가, 현실을 깨고 나갈 수 있는 힘을 비축하게 되었다. 다시 꿈꿀 수 있도록 자극제가 되어준 그녀가 고맙다. 

그녀와 선상 카페에 마주 앉았다. 그녀가 묻는다.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누구야?” 난 5년 전 K를 떠올린다. 기억 속의 K는 나를 참 많이 아프게 했다. 부당하게 내 노력을 짓밟고 가로채서 다른 사람에게 던져주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로 난 사람을 믿지 않았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흔들리는 내 눈동자를 의식한 듯 말한다. “우리 기억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일까?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상황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어. 기억이 갖는 주관성과 뇌가 갖는 가소성을 간과해서는 안돼!”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억의 주관성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K에 대해 기억해 본다. 어쩌면 내 입장에서만 합리화된 기억은 아닐까? K에게 나는 어떤 기억일까? 내 기억 속의 K처럼 K에게 나도 왜곡되고 굴절된 기억은 아닐까? 뇌의 가소성과 불완전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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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2015-04-06 00:17:59
비밀이야~

김준혁 2015-03-30 05:25:31
ㅋㅋK가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