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이 아름다운 삶 살아야
뒷모습이 아름다운 삶 살아야
  • 박병찬 <안보 칼럼니스트>
  • 승인 2014.10.0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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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찬의 세상읽기
박병찬 <안보 칼럼니스트>
처가 어른 상(喪)을 치른 지 1주일이 됐다. 자식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딸들은 아직도 부친을 보낸 슬픔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되고 있다. 잠자다 벌떡 일어나 잠꼬대 같은 헛소리를 해 가족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고인이 남긴 흔적과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고인은 평생 좀처럼 빈틈이 없었다. 가시면서 유언도 없었다. 있었다면 생전에 분란의 소지를 다 없애고 가셨다는 것이다. 가끔 자식들끼리 화목하게 잘살기를 바라는 말씀만 했을 뿐이다. 자식들 모르게 자신의 병원비 등 이런저런 주변정리까지 미리 다 끝냈다. 마지막 순간도 두 딸의 손을 잡고 상주인 아들이 도착한 것을 보고 눈을 감으셨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고 사랑이었을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끝까지 주변정리에 최선을 다한 고인의 이런 모습이 자식들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돌이켜볼 때 고인은 끝까지 엄격하셨다.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신과 자식들에게만 그랬다. 손자들에게는 너무나 자상했다. 특히 어린 시절 처가에서 자란 우리 아들과 딸에게는 각별한 사랑과 정성을 주셨다. 생활자체가 그 얘들과 함께 웃고 우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런 고인 덕분에 그 얘들은 올바르게 잘 자랐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간병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그 회한(悔恨)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곤 한다. 때늦은 후회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슬픔을 접어야 할 듯싶다.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고인이 원하는 일일 것이고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인께서 생전에 보여준 일관되고 절제된 생활, 올 곧은 마음과 참사랑은 평생 간직하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상(喪)을 치르는 동안 감사한 분들도 많았다. 특히 바쁜 가운데 직접 조문한 분들이 그렇다. 잊어서는 안 될 분들이다. 하여 이 자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고인의 영면(永眠) 앞에 관심과 슬픔을 함께한 친인척, 육군리더십센터 동지 등 군 선후배, 한국교원대학교 교직원 등 직장동료, 고향 동창생 등 모든 분들께 상주 및 관계자들의 마음을 모아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하여 인생이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라고도 한다. 즉 인생은 출생과 죽음사이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출생과 죽음은 선택이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죽느냐하는 것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가는 길이 추할 수도 빛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오늘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말했다. 오늘이 행복하다면 지난 세월을 잘 살았다는 말일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인생을 되돌아보며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삶의 매 순간순간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곱씹어보게 하는 말이 아닌가싶다.

생전에 제 역할을 다하고 그때그때 주변정리를 잘 함으로써 언제가 될지 모르는 사후(死後)까지 주변사람들에게 피해가 아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생! 그런 인생이라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한평생 잘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이번에 영면(永眠)하신 고인의 삶이 그랬다고 본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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