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녕 양궁장을 걸으며
김수녕 양궁장을 걸으며
  • 최지연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14.10.0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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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연 교수의 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교수>
걷기에 참 좋은 날씨다. 근무하는 학교 주변에서 잠시 거처를 옮겨 살게 된 요즘, 나는 걷기 기쁨에 흠뻑 빠져 있다.

명암저수지를 한 바퀴 돌면 1km가 넘으니 두세 바퀴만 돌아도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잔잔한 호수의 물을 바라보면 절로 마음이 평안해지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저수지 돌기가 조금 지루해지면 산 중턱에 위치한 김수녕 양궁장으로 올라간다. 산속이라 공기도 좋고 방풍림이 둘러져있어 조용한데다 양궁장의 푸르고 너른 잔디밭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요즘 인천아시안게임 개막 후에는 조금 달라졌다. 양궁장 트랙을 돌 때마다, 궁사들의 활시위 당기는 장면이 오버랩되고, 한발 한발 숨죽이며 과녁에 가서 박히는 화살에 집중했던 TV 중계방송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긴장된다.

아시안게임, 개막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얼마 후면 폐막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종합 2위를 목표로 숨 가쁘게 달려왔고, 여러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남기며 오늘까지 무사히 경기가 진행 중이다.

여러 분석가들이 최강의 전력이므로 쉽게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상했던 야구팀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자 선수단 전체가 뛰어나와 환호했고, 1, 2세트를 내주고 뒤지다 극적으로 역전한 양궁 남자 리커브 개인 결승전의 오진혁 선수는 보는 사람에게도 큰 기쁨을 주었다.

메달리스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아쉬움에 고개를 떨구기도 한다. 코넬대학 빅토리아 메드백과 톨레도대학의 스콧 메디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표정을 비디오로 녹화 분석해 동메달을 받은 선수의 표정이 은메달을 받은 선수보다 밝다고 발표했다.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을 받은 선수와 자기를 비교해 아쉬워하고 실망하는 반면, 동메달리스트는 자칫했으면 시상대에도 오르지 못할 뻔했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자신의 현재 모습이나 성취와는 상반된,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에 대해 다시 음미하고 생각해보는 것을 ‘사후 가정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라고 한다.

사후 가정 사고에는 상향적 사고와 하향적 사고, 두 가지가 있다. 상향적 사고는 실제 상황을 더 바람직하고 좋은 상황과 비교하는 것이고, 하향적 사고는 더 나빠졌을 상황과 비교하는 것이다. 상향적 사후 가정 사고는 비판적인 사고에, 하향적 사후 가정 사고는 낙관적인 사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두 사고는 삶에서 모두 필요하며, 하는 일의 목표에 따라 사고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가끔은 빠듯한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후 가정에까지 높은 잣대와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 서글퍼 보인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모든 사람의 목표라면 가끔씩은 더 악화되지 않은 것에 위안을 삼으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금메달은 금메달대로, 은메달은 은메달대로 최선의 결과라 생각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스포츠에서 실력을 겨루는 진정한 목표일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두라 하지 않던가?

우리에게 신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김수녕 선수는 선수 시절 활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쏜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든, 과녁을 벗어나든 그 화살은 이미 과거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쏜 화살보다는 앞으로 쏠 화살, 내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였기에 그녀는 신궁이 됐는지도 모른다.

이제 활을 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고3 수험생 모두 쏠 화살에 집중하며 과정에 최선을 다하길 소망해본다. 힘내라,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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