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부인을 투사로 만드는 나라
애마부인을 투사로 만드는 나라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4.09.2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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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영화 ‘애마부인’의 탄생은 그 문화나 예술적 차원보다는 시대적 배경에 근거한 측면이 더 강하다.

80년대 초 전두환의 신군부 권력이 내심 집착한 것은 3S 정책이었다. 광주라는 전장을 통해 총구(銃口)를 내세워 잡은 권력을 합리화시키고 격앙된 국민여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는 독재의 수호신이라는 3S만한 것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급거 프로스포츠가 태동했고 영화 애마부인은 섹스와 스크린을 한꺼번에 충족시킬 묘책 쯤으로 만들어졌다. 1982년의 일이다.

빛이나는 듯한 살결의 튼실한 말(馬)과 그 위에 올라탄 채 머리를 뒤로 젖힌 고혹스런 표정의 육체파 여배우로 상징되는 이 영화는 그해 1탄을 시작으로 이후 14년 동안 총 13명의 애마부인을 만들어내며 국내 에로영화를 대표하다가 1996년 13편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지금, 언론과 SNS 등을 통해 졸지에 투사로 떠오른 김부선은 1985년 뭇 남성들을 설레이게 한 세번째 애마부인이다. 당시 그녀의 화끈한 연기는 여전히 이 나라 중장년들에게 에로티시즘에 대한 시들지 않은 아련함(?)을 안기고 있다. 그런데 이 애마부인이 아파트 반상회 폭행 사건으로 돌연 배우에서 의인(義人)으로 둔갑했다.

보도를 통해 그 베일이 속속 벗겨지고 있지만 그날 김부선의 행동은 사회 부조리에 대한 응징이었다. 누구는 난방비 아끼려 이불 하나로 덜덜 떨며 지내면서도 수십만원을 부담하는 반면 어느 누구는 겨울 혹한에조차 반팔 차림을 할 정도의 온기를 즐기면서도 단 한푼을 내지 않는 현실이 그녀로선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여 아파트관리사무소와 구청, 시청 심지어 경찰에까지 문제를 제기하며 외롭게 싸웠건만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무려 100여 가구가 넘는다는 난방비 0원의 당사자들 중 단 한명도 이를 시인하거나 문제제기를 안 하고 그저 쉬쉬하며 도둑 난방을 계속해 왔다는 사실엔 할 말마저 잊는다. 이 정도가 되면 폭행이 아니라 아예 지구에서 내쫓아도 시원찮을 판이다. 우리사회가 극도의 부도덕, 반 인간적으로 변질됐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부선은 이번 폭행 사건의 와중에서 이런 말을 했다. “보통 사람들은 2백, 3백만원 벌고도 감사하게 잘 사는데 공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수억원을 쉽게 벌고도 사회를 돌아보지 않는다.” 과거 필로폰과 대마초로 감방을 들락거린 그녀로선 쉽게 입에 올릴 얘기가 아니지만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위 ‘몸’ 배우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김부선은 1986년 여름 청와대로부터 은밀한 파티에 초대받지만 “내가 기생이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얼마후 필로폰 투약혐의로 구속된 그녀는 나중에 “어명을 거부한데 대한 괘씸죄”라는 취지의 말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처음 수감된 교도소에서 그 해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건국대 사태의 주역인 운동권 학생들을 만나 생활을 같이 하게 된다.

그들을 접하면서 김부선은 “자신은 재벌가의 파티에서 필로폰을 투약하는 동안 누구는 옳다고 믿는 일에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는 것에 자신을 되돌아 봤다”고 한다. 그래서 출옥 후 한 일이 효순 미선 미군장갑차살인 규탄,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공동주택 부정부패 척결 등이었고, 장자연 사건으로 연예계의 성상납이 이슈가 되었을 때는 자신의 경험을 내세워 누구보다도 앞장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활동의 압권이 당시로선 상상도 못할 대마초 합법화 운동이었다. 물론 대마초 합법화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 때 그녀가 내세운 명분은 백번 들어도 가슴에 와 닿는다. “소수의 강자들이 논리없이 무고한 젊은이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억압하기 때문이다.” 결국 김부선이 늦게나마 깨우친 건 우리사회의 강자논리, 이른바 지배논리의 야만성이었고 이를 깨려는 과정에서 이번 폭행사건이 불거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문제의 지배논리에 고스란히 속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다. 권력은 절대로 자비롭지 못하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은 채 그저 하염없이 청와대만 바라보는 세월호 유가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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