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자살한다. 아니 우리사회가 자꾸 죽어간다
의사들이 자살한다. 아니 우리사회가 자꾸 죽어간다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4.09.1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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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불과 며칠 사이에 지역에서 활동하던 젊은 의사 세명이 죽었다. 모두 자살로 추정됐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의 성격은 좀 다르지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일반인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됐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의사는 가장 많은 학습과 수련을 거쳐야 하는 직업이다. 대학에서는 예과(2년)와 본과(4년)로 6년 그리고 레지던트로 4년, 여기에다 남자의 경우는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3년 등 무려 13년을 인고해야 비로소 전문의가 된다. 이렇다 보니 사회· 경제적 여건에서 최고 선망의 직업이 의사였고 일단 자격증만 따면 아파트와 자동차 키를 무기로 하는 혼담(婚談)이 줄을 선다는 속설이 아주 자연스럽게 들렸다.

그런데 이런 대망(?)의 시작 점에 선 젊은 의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지난 13일 대전과 세종시에서 자살한 의사는 각각 28세와 33세다. 나흘 뒤 청주에서 숨진채 발견된 레지던트 의사는 27세다. 지난해 말 병원 운영난을 비관해 자살함으로써 ‘개원의 보다는 월급장이 의사가 낫다’는 시대적 화두에 불을 지핀 광주의 내과의사 또한 한창 일할 나이인 44세였다.

지난 8월 말쯤 미국 뉴욕에서는 두명의 초년 레지던트 자살이 큰 파문을 던졌다. 이 때 나온 통계가 미국에서는 한해 400여명의 의사가 자살을 하고, 의사들의 자살 충동은 일반인의 2배라는 연구결과다. 그러면서 젊은 의사들의 정신적 육체적 탈진과 이로 인해 의사로서의 신념까지 흔들리는 세태가 공론화 됐다.

모든 직업이 다 그렇듯 전공에 대한 엄격한 학습과정을 거쳐 직업전선에 뛰어들지만 막상 현실은 이상과는 너무 동떨어진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배울 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마치 성서처럼 여기면서 의술을 익히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계 현실은 ‘돈’이 절대적 우선이다. 의술 행위 자체가 돈되는 진료과목, 돈 되는 수술에만 매몰되는 현실에서 젊은 의사들이 13년간 다져온 의사로서의 신념을 곧추세우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의료계 특히 의사들의 현실은 최근 일련의 일들에 대해 올려진 한 인터넷 글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더 이상 환자를 위한 진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깊이없는 진료, 냉정한 자기방어, 반복되는 일상속에 식어가는 내 열정이 아쉽다.”

이른바 죽어라 공부했지만 레지던트 과정에서의 지도교수나 전문의 와의 상상을 초월하는 주종(主從)적 갑을 관계, 기껏 이것을 끝냈더니 기다리는 건 더 험악하고 이기적인 현실세계, 여기에다 의사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위상이 과거에 비해 크게 실추되고 있는 작금의 시대적 추세가 이들에게는 그저 버거울 수도 있겠다. 자살에 대해선 숱한 원인들이 얘기되고 있지만 큰 틀로 보면 결국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상실감이 가장 크다. 우울증도 그렇고 빈곤이라는 경제적 문제, 가정폭력, 애인과의 결별 등이 모두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줬던 ‘인격적 존재감’을 졸지에 무위(無爲)로 만들어 버리는 상실, 패배감인 것이다.

조직 생활에서도 가장 큰 스트레스는 업무가 아니라 인격적 모독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만약 부하직원에게 “너는 그 월급받고 하는 일이 뭐냐”고 말하거나 취직을 못해 전전긍긍하는 자녀에게 “아이고 밥값도 못하는 놈아”라고 질타한다면 당사자는 평생의 상처를 안게 된다. 우리에게 ‘시골의사’로 잘 알려진 박경철 외과의사는 “의사는 희로애락 가운데 애(哀)의 절대량이 많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매 순간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늘 접하는 일상과 가족이 최고의 행복임을 주문했다.

맞는 얘기다. 나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 혹은 달라야 한다고 여기는 순간 삶은 힘들어 진다. 더 이상 젊은 의사들이 세상의 어려움을 혼자서만 껴안고 사그러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런데 지금, 단식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피자를 폭식하며 인격을 넘어 아예 ‘인간 말살’을 충동질하는 무리가 있다. 이 와중에 권력은 민생을 외친다. 의사가 자살하는 게 아니라 우리사회가 자꾸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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