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전통’을 찾아나선 충남도
‘인문 전통’을 찾아나선 충남도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4.07.22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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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 <내포>

충남도는 지난 21일 문화예술 발전전략을 짜면서 ‘인문(人文)전통’에 기반한 문화정체성 확립을 선언했다. 인문학이 대세다. 주민교양 프로그램, CEO교육 등에서 인문학을 들먹거린 게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인문학(humanities)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 ‘인간과 인류 문화에 관한 모든 정신과학’ 등이다. 쉽게 말해 인간(조상)이 남겨놓은 고상한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학문이다.

충남은 조선 후기 정계를 뒤흔든 예학의 한 축이었다. 송시열·송준길 등을 중심으로 한 서인과 허목·윤휴 등의 남인은 효종과 효종비의 죽음을 싸고 두 번의 ‘예법 전쟁(禮訟)’를 치렀다. 1659년 1차 때는 서인이 승리했고, 1674년 2차엔 남인이 이겼다.

젊은 계모(자의대비)가 자신보다 나이 많은 아들(효종)과 며느리(효종비)가 죽었을 때 상복을 얼마나 입느냐가 쟁점이다. 원래 일반 양반가에선 아들이 죽으면 1년, 며느리가 죽으면 9개월 상복을 입는데 왕가에선 3년, 1년씩 입는다. 그런데 효종이 장남(소현세자)이 아니라 차남(봉림대군)이기 때문에 왕위에 올랐어도 왕가가 아니라 양반가 예법을 따라야 한다는 게 서인 주장이었다.

지금 들으면 하찮은 일 같아도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은 당시 조선사회에서 국가 기강을 세우고 인륜질서를 일으키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예의와 염치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다. 선비는 학문에 앞서 사리를 판단해 절의와 지조를 목숨보다 중히 여겨야 한다. 예는 당시 지식인의 사회활동 방식이며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규범이다. 그만큼 중요한 덕목이다.

회덕(대전 송촌동)에 둥지를 튼 은진 송씨들. 이들은 연산(논산)의 김장생·김집 부자(父子)의 가르침을 받았다. 김장생은 아들 김집을 두고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이로움(相長之益)’이 있다며 서로 존중·협력해 조선 예학을 정립했다.

충남 유학의 또 다른 한 축은 같은 논산 노성면의 파평 윤씨. 윤황-윤선거-윤증 3대로 이어진다. 윤황은 율곡과 쌍벽을 이루던 우계 성혼의 사위다. 그러나 아들 윤선거가 남인 윤휴를 두둔하면서 친구 송시열과 멀어지게 된다. 이것이 윤증 대에 이르러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는 계기가 됐다.

어떻든 조선 후기 정치계는 과거에 나가지 않는 이들 ‘산림(山林)’이 좌우했다. 18세기 이후 정치사에선 영남의 남인·북인은 발붙일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충남에 서인 계열만 있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 북인이었던 이산해는 지금 예산 대술면에 묻혀 있다. 서인 정철을 광해군 세자 책봉문제로 궁지로 몰아넣었던 인물이다.

또 내포지방은 ‘인물성(人物性) 동이론(同異論)’의 본산이다. 아산 외암마을에 살던 외암 이간과 홍성 남당리의 남당 한원진은 모두 송시열의 수제자 권상하 문하에 있었다. 둘은 18세기 초 인성과 물성은 같다(이간), 다르다(한원진)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다. 이른바 호락론(湖洛論)이다, 여기서 북학파(실학), 개화론으로 맥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조선 후기 성리학의 본류는 충남의 금강유역(회덕·논산), 내포지역(아산·홍성)이었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충남도는 이런 인문학적 전통을 토대로 문화 정체성을 세우겠다는 각오다. ‘인문정신문화 진흥조례’를 만들어 문화정책의 기틀을 마련하고, 270억원을 들여 ‘충남 유교문화원’을 만들려고 한다. 진득하게 추진하면, 여기서 충남의 대표 문화컨텐츠가 탄생할 수 있어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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