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물고기'까지 삼키는 탐욕
'청소부 물고기'까지 삼키는 탐욕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2.06 22: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큰 물고기의 이빨을 관리해주는 '청소부 물고기'가 있다고 한다. 이 물고기는 덩치가 큰 육식성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입안에 들어가 이빨 사이에 끼여있는 찌꺼기들로 배를 채운다. 큰 물고기는 이빨을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고, 청소부 물고기는 허기를 해결할 수 있으니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이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와 흡사하다.

어느 동물학자가 두 물고기의 공생관계를 놓고 가상 시나리오를 썼다. 큰 물고기가 그날따라 먹은 것이 부족했던지 입안에서 한창 작업중인 청소부 물고기를 덥썩 삼켜버렸다. 손쉬운 사냥법에 맛을 들인 이 큰 물고기는 만행을 계속 이어갔다. 시간이 흘러 동료들의 잇단 희생과 원인을 파악한 청소부 물고기들은 이 어면수심의 물고기에 대해 구강청소 서비스를 중단했다. 뒤늦게 후회한 큰 물고기가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청소부의 출동을 간청했지만 헛수고였다. 한때의 허기를 참지못한 작은 욕심 탓에 공생관계가 깨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큰 물고기가 청소부를 배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공생관계는 진화한다. 청소부 물고기로 변장해 큰 물고기를 괴롭히는 얌체 어종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큰 물고기의 입안에 들어가 청소를 하는척 하다 살점을 뭉턱 뜯어내 도망치곤 한다. 이런 일이 잦아지면서 둘 사이의 신호체계가 더욱 정교해졌다고 한다. 나일악어의 기생충을 잡아먹으며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악어새의 서비스도 진화했다. 기생충 박멸에 그치지 않고 악어에게 위험이 닥칠 것 같으면 울음소리를 내서 알려주기도 한다.

영동농협이 지난달 설 명절을 앞두고 조합원 5000여명에게 12만원권 '영농자재교환권'을 지급했다가 재래시장 상인들과 충돌했다. 자그마치 6억원이 넘는 액수다. 교환권의 용도를 취지대로 영농자재 구입으로 제한했다면 사단이 벌어졌을리 없다. 농협은 이 교환권으로 일반 생필품 구매도 가능토록 했다. 농협 산하 점포에서만 사용하도록 유통구역도 제한했다. 명절 직전에 풀려나간 농협상품권들이 몰릴 곳은 지역의 농협 점포, 즉 하나로마트밖에 없다. 실제로 명절 전 영동농협 하나로마트를 찾았던 주민들 중 상당수가 발길을 돌렸다. 매장은 발디딜 틈없이 북적거리는데다 계산대마다 장사진을 이뤄 장을 볼 엄두를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농협이 영농철도 아닌 한겨울, 그것도 설 대목을 목전에 두고 6억원이 넘는 '영농자재교환권'을 시장에 푼 목적은 뻔하다. 조합원들에게 생색을 내고 방출한 재원도 고스란히 환수하면서 영업실적도 쌓겠다는 의도 아니겠는가. 전형적인 농촌도시인 영동에서 농업인들은 주요 소비층이다. 대형마트가 군림하는 시대에서 그나마 소비 패턴이 재래시장에 머무는 소비군이기도 하다. 5000명이 넘는 농업인들의 명절 소비활동을 농협 점포로 국한한 조치에 대해 재래시장 상인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

영동농협 하나로마트는 지난 2008년 재래시장 상인들의 반발 속에서 출범했다. 농협은 지역 농산물 판로 확대와 수익의 사회 환원을 약속하며 지역의 반대여론을 달랬다. 시장 상인들도 상생논리와 전국적 대세에 굴복하면서 하나로마트는 별다른 마찰없이 무혈입성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영동농협은 하나로마트 개장 이후 승승장구했다. 2009년도 실적 평가에서 전국 최우수 조합으로 선정됐고, 전국 1등 성적은 이듬해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영동농협은 지난해에도 24억원 이상의 순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1등 공신이 하나로마트 매출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달 조합원들에게 나눠준 상품권도 이 실적에 따른 성과급 성격으로 알려졌다.

농협중앙회는 농민조합 탈을 벗은지 오래다. 주유업에서 상조업, 프랜차이즈 카페에 이르기까지 문어발 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모습은 재벌 뺨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농촌의 지역농협들까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중앙회를 닮아간다는 점이다. 농촌지역의 초라한 상권을 놓고 이미 전의를 상실해 상대도 되지않는 재래시장과 싸우고 갈등하는 농협은 공생해야 할 청소부까지 잡아먹는 탐욕스런 물고기를 연상시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