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은 달, 그리고 입춘
해를 품은 달, 그리고 입춘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02.0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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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부국장(취재2팀장)

MBC 문화방송의 기자와 PD 등 방송노동자들이 공정방송과 사장퇴진을 주장하며 파업을 하든 말든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시청률은 여전히 높다. 지난 1일 방영된 9회 방송분은 자체 조사에서 34.5%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다.

말 줄임을 일삼는 세태에 따라 '해품달'로 불리는 이 드라마는 조선시대의 로맨스를 이야기의 가장 큰 줄거리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로맨스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모든 만물과 세상의 꼭대기에 있는 왕과(비록 양반가문 출신이기는 하나) 천하기 그지없는 신분인 무녀의 사랑이라니, 아무리 작가의 상상력이 풍부하기로서니 이토록 엄청난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현실에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헤쳐나가면서 애절한 사랑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졌으면 하는 평범한 대중의 소망이 작용하는 까닭이지 싶다.

드라마의 원작을 쓴 정은궐 작가는 신분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종방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 역시 그녀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로, 남성 중심 마초의 시대에 남성만의 영역에 남장을 한 여성이 발을 들여 놓고 또 거기에서 사랑을 만들어 내는 상상력과 왕과 무녀의 사랑이라는 통상적인 관념의 틀을 깨는 발상은 서로 닮아 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그러나 엄연히 실록에 기록된 역사의 장면들과도 너무나 흡사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역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부분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죽음, 그리고 정조로 이어지는 시대상황일 것이다. 드라마틱하기 그지없는 이 시대의 이야기는 지금도 역사학자들 사이에 상반된 의견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분분하다. 그 배경에는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전제주의 체제에서의 치열한 당권 다툼이 있고, 왕권마저도 좌지우지하려는 당파가 엄연히 존재했으니.

어디 그뿐이랴. 그 치열한 당파의 대립 과정에서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비극은 어떻고,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아버지의 죽음을 초월해 개혁 군주로 우뚝 서려했던 정조의 독살설은 또 어떤가.

드라마 '해품달'은 일견 상상조차 초월하는 조선시대 왕과 세자빈으로 간택된 뒤 음모에 휘말려 죽었다 살아난 무녀의 사랑을 다루는 로맨스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는 눈물을 머금으며 아끼던 이복동생을 사사할 수밖에 없었던 선왕 성조대왕이 있고, 대비 한씨가 있으며 그 정점에는 외척과의 정치적 연대가 굳건하면서 수렴청정의 전력을 지닌 대왕대비 윤씨가 있다.

역사의 기록은 어떤가.

영조와 정조, 그리고 그 사이에 낀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라는 파란만장함이 있고, 뒤주에 갇힌 채 세상과 하직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과 함께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는 정조의 독살설이 있다.

거기에는 또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가 있고, 시파와 벽판의 사활을 건 당쟁이 있으며 외척의 득세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정조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아 있던 '한중록'의 지은이 혜경궁 홍씨(경의왕후, 영의정 홍봉한의 딸)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역사는 우리가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것처럼 '한중록'이 사도세자의 비극에 대한 부인의 애절한 사부곡으로 비추고 있지 않다.

젊은 나이에 죽은 남편을 애도하면서 역시 젊은 여인의 입장에서 '한중록'은 써진 것이 아니라 그녀의 나이 회갑에 이르러서야, 그것도 친정 조카의 요청에 의해 쓴 것이 '한중록'이다.

재야 역사학자 이덕일은 그의 책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이때부터 지금까지 노론의 득세라는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일이 입춘이다. 비로소 새로 시작되는 날인 데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의 건양(建陽)이 조선왕조 마지막 부활을 꿈꾸던 고종의 황제 즉위 이후의 연호에서 유래된 것이며, 그것은 혹시라도 노론과 식민사관과는 상관이 없는 것인지 궁금한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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