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맨더링 논란, 맞을 매가 많다
게리맨더링 논란, 맞을 매가 많다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2.01.31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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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 지도를 바꾼다. 놀랍지만, 곧 보게 될 것 같다. 이른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국내 3~4곳 정도의 행정구역을 4월 총선에 앞서 손을 댈 모양이다. 시·군·구의 경계를 조정해 선거구를 짜 맞추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권고를 '묵살'하기 위해서다. 여야를 대표하는 한나라, 민주통합당이 서로 실리를 챙기기 위해 벌이는 추태다.

두 당의 계획대로 한국판 게리맨더링이 실현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거 A구(區)에 살던 유권자가 A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뽑았다가 이번 총선에선 B구의 국회의원을 뽑아야 한다. 남의 지역구 대표를 뽑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한다.

실제 당장 벌어질 가능성이 100%다. 선거구획정위는 애초 정개특위에 8개 선거구 분구, 5개 선거구 통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개특위는 내부적으로 통합 대상 선거구는 그대로 존치시키고 분구 대상인 선거구 중 2개만을 분구시키는데 합의를 이끌어냈다. 물론 자유선진당 류근찬 의원 등 반대하는 위원들이 있지만 다수 힘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우선 이천·여주 선거구와 천안을 선거구만 보자. 여주 사람들은 그동안 이천과 함께 단일 선거구로 묶여 이천과 여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뽑아왔다. 그런데 정개특위는 여주를 이천과 분리해 양평 가평에 붙일 계획이다.

여주 사람들로선 지형적, 정서상으로 동떨어진 지역에 통째로 선거구가 흡수돼 '내 지역구가 아닌 다른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상황을 맞게 된다. 천안을 선거구도 마찬가지. 천안은 동남구가 천안갑 선거구와, 서북구는 천안을 선거구와 합치된다.

특위는 역시 분구 대상인 천안을 선거구, 즉 서북구 경계를 동남구쪽으로 조정해 서북구 사람들이 동남구 국회의원을 뽑게 할 심산이다. 용인 기흥도 다르지 않다. 인구가 무려 36만명으로 분구 대상인 기흥을 분구하지 않기 위해 기흥의 동백지구를 전혀 정서가 다른 용인 처인구에 갖다 붙일 계획이다. 다른 몇 곳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같은 반발에도 게리맨더링을 하려는 정개특위 소속 위원들의 속내는 뭘까. 일단 표면적으로는 공직선거법에 정해져 있는 국회의원 정수 299명을 넘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나 너무 속이 들여다보인다.

공직선거법상의 특례규정-국회의원 정수(299명)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시군구의 경계를 조정해 선거구를 나눌 수 있다-를 내세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299명을 유지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여당 텃밭인 울산으로 가보자. 울산은 현재 인구가 113만명. 국회의원은 6명이다. 선거구획정위의 인구 상한선 31만406명을 대입하면 울산은 국회의원을 4명으로 줄일 수 있다. 물론 구청 간 통합과 경계 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울산 유권자들이 가만히 있을까.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물론 사람 수에 따른 무자르기식 선거구 조정은 있을 수 없다. 이번 정개특위의 선거구 획정 논의 과정을 보면 철저히 두 거대 정당의 이해가 작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살아남은 선거구는 철저하게도 두 정당의 텃밭들 뿐이다. 신설 예정 선거구도 서로 나눠 먹기가 가능한 곳이다.

내 지역 선량을 뽑을 수 있는 유권자 권리 묵살, 표의 등가성 논란, 선거구 법정주의 왜곡, 공직선거법 특례 남용 등 맞을 매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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