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과 사법부의 불신
부러진 화살과 사법부의 불신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1.2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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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설 연휴를 앞두고 한갓진 오후 '부러진 화살' 영화를 봤다. 작년 '도가니'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며칠 전 영화의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가 수감돼 있던 교도소를 네 차례씩이나 면회를 다녀왔다는 아는 교수님의 설명도 있고 해서 관심있게 영화를 봤다.

지난 2007년 석궁을 가지고 판사를 테러하려고 했다는 언론의 보도 내용이 내가 가진 배경지식의 전부였다. 당시 언론은 사법부에 대한 도전이라며 대서특필했고 일반 국민도 사법부의 시각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만기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후 만들어진 이 영화는 순수제작비가 5억 정도의 소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지만 설 연휴를 고비로 이미 손익분기점이 넘었다고 하니 제2의 도가니처럼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사건 당시에도 판결에 불만을 품은 그것도 사회지도층 인사라 할 수 있는 대학교수가 해당 판사를 석궁으로 테러한 일은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내내 느끼는 감정은 답답함이었다.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보다는 이미 예단한 순서에 따라 재판하는 모습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건 발생 후 4일 뒤 전국법원회의에서 '사법부에 대한 테러'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부러진 화살을 찾지 못하거나 혈흔에 대한 감정을 하지 않았느냐는 큰 의미가 없었다.

석궁이라는 가공할 살인 무기로 재판을 담당한 판사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이 묻혀버렸다. 무리한 재판을 이끄는 판사를 상대로 법전을 펼쳐놓고 법적 절차나 법으로 명시된 판사의 의무에 대해 지적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판사, 사법부의 권위는 한순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판사를 테러하기 위해 석궁을 들고 아파트를 찾아가 협박한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교수의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합리적 판단의 기본 전제라 할 수 있는 증거물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판결한 것은 짜 맞추기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현행 형사소송법 307조에 따르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법관의 자의에 의한 사실인정을 배제하고 합리적이고 적정한 증거에 의한 사실 인정이 요청된다.'고 되어 있다.

사라진 화살에 대한 명백한 설명도 없이 무리하게 재판을 이끌어 낸 사법부의 판단이 국민의 불신과 논란의 불씨를 집혔다. 활을 떠난 시위처럼 영화가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느냐는 이제 중요치 않게 되었다. 잘못된 판단이 불러오는 사회적 파급 효과가 국민의 가슴 속에 각인되어 있고 이것은 도가니 영화의 학습 효과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국민의 끊임없는 요구에 직면해 있지만, 내부비리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검찰 개혁이나 국민의 감시를 받지 않는 폐쇄된 사법부의 권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임은 사회적 문제로 부상될 것이다. 그래서 '부러진 화살'의 실제 변호를 맡았던 박훈 변호사의 주장대로 "판사·검사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된 경우에는 특별검사제도처럼 최소한 한시적으로 특별법원을 설치해 독립적인 재판을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것이다.

석명권(釋明權)처럼 법원이 사건의 진실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당사자에게 법률적·사실적 사항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주고 입증을 촉구하는 약자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법 앞에 평등이라는 대전제조차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 국민도 없다. 판사의 권위는 공정한 판결로 법의 가치를 실현하고 누구나 순응할 수 있는 당위성을 가질 때 서는 것이다. 당시의 법원 판결이 옳다고 주장해도 유독 재벌과 정관계 인물에 대해 관대한 판결을 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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