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세상
- 류시화 -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 겨울숲에 들면 새의 날갯짓에 흔들리는 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습니다. 앙상한 가지 위로 깃털처럼 가벼운 세상이 묵직하게 내려앉습니다. 나무가 생명을 품는 사이. 사랑이 다인 줄 알았던 한때가 지나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는 한때가 지나갔습니다. 그 한때를 비워내기 위해 끝없이 흔들리는 것도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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