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그리고 읍참마속(泣斬馬謖)
봉사 그리고 읍참마속(泣斬馬謖)
  • 원준희 <충주소방서 현장대응단장>
  • 승인 2011.06.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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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원준희 <충주소방서 현장대응단장>

'화재를 예방·경계·진압하고 화재, 재난·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에서의 구조·구급 활동 등을 통해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공공의 안녕 및 질서 유지와 복리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소방기본법 제1조 소방기본법의 그 목적에 해당하며 소방공무원의 존립목적을 잘 설명해 주는 글이기도 하다.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빠른 현장대응력 즉, 신속한 출동태세 확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자동차들, 이로 말미암은 주차 공간 부족현상, 여기에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불법 주·정차들의 증가로 인해 긴급 출동 시 소방관들은 재난과의 전쟁 이전에 차량들과의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게 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했다. 만일 나의 가족이 응급환자이고 나의 집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의 방해로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면 과연 누구를 탓할 것인가. 지난해 12월 30일 청주시 내덕동에서 다가구주택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거주자 1명의 사망과 구조작업을 벌이던 소방관의 부상이 발생했다.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로 인해 현장진입이 용이치 않아 결국 초기진압의 실패로 이어졌으며 끝내 소중한 인명과 막대한 재산의 피해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서 불법 주·정차 단속권한이 충북도 소속 공무원까지 확대되는 도로교통 관련법령이 2011년 1월 1일부터 개정 시행됐으며 오는 2011년 7월 1일부터는 집중 단속이 시행된다.

주요 단속지역으로는 화재취약대상 및 화재경계지구의 주요 진입로, 전통시장 진입로 및 주요도로, 상기지역 진입로 및 주요도로, 소화전 주변 및 소방차 전용 주차지역 등이며, 차종별 과태료는 승합자동차, 4t초과 화물, 특수자동차는 5만원(같은 장소에서 2시간 이상 위반 시는 6만원), 승용자동차, 4t이하 화물, 특수자동차는 4만원(같은 장소에서 2시간 이상 위반 시는 5만원)이다.

단속을 시행하기에 앞서 소방공무원은 신속한 소방출동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보는 한편 봉사의 객체인 국민들을 봉사의 주체인 소방공무원이 단속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됐다.

칼자루는 손에 쥐어졌지만 과연 누구를 향해 칼을 휘둘러야 하는가.

제갈량이 소리 없이 울며 마속을 베었다는 중국 삼국시대의 고사에서 비롯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기강을 바로 세우려던 제갈량의 심정은 아마 작금의 우리와 비슷했으리라.

불법 주·정차 단속을 통해 소방출동로 여건의 개선과 각종 재난현장으로의 신속한 출동태세가 정립돼 양질의 소방 서비스가 원활하게 공급되면 최대 수혜자는 바로 국민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 개개인의 인식변화에서부터 출발돼야만 한다. 이를테면 주택이나 상가밀집지역의 진입로, 소방용수 시설의 인근, 아파트 단지 내 소방차 주차 대상지역 등에 자신의 불법 주·정차로 인해 소방활동에 지장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최소한의 다짐이 필요하겠다.

단속이라는 칼을 빼들어 위압적으로 국민들을 계도하려 한다면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정책이라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민 개개인이 나 하나쯤이 아닌 내가 먼저라는 생각으로 소방출동로 확보에 자연스럽게 동참을 하게 되면 단속이라는 칼은 사용할 필요도 없이 무뎌지고 녹슬게 돼 궁극적으로 국민과 하나 되는 소방서비스가 실현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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